베이징은 말 그대로 한·중 관계 폐허의 현장
中의 사드 보복은 지정학적 게임의 본보기로 한국을 선택한 결과
出口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박두식 부국장
박두식 부국장

지난주 중국 베이징을 다녀왔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 '그라운드 제로'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라운드 제로는 핵무기가 폭발한 지점 또는 피폭(被爆) 중심지를 일컫는 군사 용어다. 이 말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9·11 테러로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한 곳을 그라운드 제로라고 부르면서다. 베이징은 한·중 관계의 그라운드 제로 현장이다. 두 나라 사이의 외교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기업인들 사이에선 '중국 탈출'이란 속삭임이 번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 관련 인사들은 하나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했다.

불과 2년 전 이맘때 한·중 관계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말이 나왔다. 2015년 9월 3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나란히 천안문 성루에 오른 것이 계기였다. 중국이 군사적으로 대국에 이르렀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마련한 '항일 전쟁 승리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행사'였다. 미국·일본·유럽 등 서방의 정상급 인사들은 중국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서방 민주주의 진영의 유일한 정상급 인사였다.

그 무렵 박 전 대통령은 일본과는 거의 절연(絶緣)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이 '중국 대국굴기(崛起·우뚝 섰다는 뜻) 기념 쇼'에 참석한 것을 미국·일본 등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한국 처지에선 일종의 외교적 도박이었다. 북핵 해결과 한반도 통일, 미·일을 합친 것보다 더 커진 한·중 교역 등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도박은 실패로 끝났다. 중국은 그로부터 10개월 뒤 한국 정부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문제 삼아 전면적 보복에 나섰다. 군사 기술적 측면만 놓고 보면 사드 미사일이나 레이더는 중국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북한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주한 미군의 전략 자산 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수단일 뿐이다. 중국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한국이 무슨 대역죄라도 저지른 듯 몰아세우고 있다.

이번에 베이징에서 들은 얘기는 중국이 한국에 대해 일종의 배신감을 느낀 게 사드 보복의 강도를 끌어올린 중요 이유라는 것이다. 사드 배치 결정 직전에 베이징을 찾은 한국 총리가 사드 배치 가능성에 대해 확답하지 않았고, 곧이어 사드 배치 결정이 이뤄지자 중국 최고위층이 분노했다는 게 정설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게 진짜 이유라면 중국은 작은 감정에 휘둘리는 '협량한 대국'이라는 말밖에 되질 않는다. 중국이 느꼈다는 섭섭함은 동맹국인 미국의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쓰고 천안문 성루에 올랐던 한국 외교의 고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7일 오전 경북 성주군 사드 기지에 추가로 배치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발사대가 점검을 받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런 유의 중국 측 불만은 문재인 정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중국도 한국의 사드 배치를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로 기울었는데, 지난 5월 문 대통령의 특사가 베이징을 다녀간 이후 다시 강경하게 돌아섰다고 한다. 친중파를 자처하는 한국 정치인들이 중국으로 하여금 헛된 기대를 갖게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드 배치에 유보적이었던 문 정부에 다른 선택 여지가 없도록 만든 것은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도발이다. 중국이 이런 기본적 사실관계나 형세 판단조차 못 할 나라는 아니라고 믿는다.

결국 중국이 현재 한국을 상대로 자행하는 보복은 미국을 겨냥한 거대한 지정학적 게임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중론이었다. 동(東)아시아에서 패권적 지위를 놓고 그 싸움 소재로 한국의 사드 배치를 문제 삼고 나섰다는 뜻이다. 사드가 문제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출구(出口)가 막막할 수밖에 없다. 베이징에서 만난 한 학자는 "한·중 관계가 사드 보복을 넘어서 더 험악한 시기에 접어들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을 본보기 삼아 선택을 강요하는 중국이 현재로선 그 계획을 접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기자는 25년 전 베이징 조어대에서 열린 한·중 수교 협정 서명식을 취재했다. 당시 한국 외교는 중국어를 구사하는 외교관을 찾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로부터 25년이면 중국이 한국을 대체 불가능한 이웃 나라로 여기도록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실제 외교부 내에 '차이나 스쿨'이 생겼고, 국내에도 지중(知中) 인사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이다. 대중(對中) 관계에서 위기가 터질 때마다 가동되는 미·일 수준의 막후 채널도 보이질 않는다.

중국은 우리에게 숙명적 존재다. 중국의 벽을 뚫지 못하면 북한 문제 해결과 통일은 불가능하다 .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이면 정파를 떠나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논의하는 게 정상적인 나라다. 그러나 베이징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자 전(前) 정권도 모자라 전전(前前) 정권까지 손보겠다는 정쟁이 벌어지고, 외교·안보팀은 안팎의 불협화음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부터 눈에 띄었다. 중국이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6/20170926032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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