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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핵전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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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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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사막 하늘에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구름이 뜨고 있었다. 바로 인류 최초의 핵폭발이었다. 20세기 초 만물의 원리를 밝혀내기 시작한 물리학자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독일의 과학·기술·경제력을 기반으로 세계 정복을 꿈꾸던 나치당이 정권을 잡았으니 말이다.

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서방의 순진한 정책 아래 체코슬로바키아가 희생되었던 1938년. 독일 화학자 오토 한이 원자핵분열에 성공하자 물리학자들은 걱정에 빠진다. 이제 핵분열을 이용한 무기 개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더구나 천재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와 나치 외교부 차관의 아들이자 핵물리학자인 폰 바이츠제커가 있지 않았던가! 독일보다 먼저 개발해야만 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권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개발된 핵무기.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소련 역시 개발에 성공하자 '핵무기 경쟁'이 시작된다. 특히 소련의 SS-20 같은 신형 전술핵미사일의 등장은 기존 서유럽 방어 전략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이미 1960년 "뉴욕과 파리 중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면 미국은 결국 파리를 포기할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지만, 패전국 독일의 자체 핵무기 개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사회민주당 출신 독일 헬무트 슈미트 총리가 미 전술핵 퍼싱-2를 배치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1980년대 독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매일 접했던 핵전쟁설. 성인이 되기 전 핵전쟁이 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나와 친구들. 그렇다면 결국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소련과의 협상도, 시민들의 핵전쟁 반대 시위도 아니었다.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었던 서유럽 핵전쟁은 오로지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구소련의 몰락 덕분에 현실화되지 않았다. 과연 북한에서의 고르바초프 등장이 가능할까?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질문이다.

아인슈타인. /조선일보 DB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6/20170926032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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