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구한말의 예언자 강증산(1871~1909)은 당시 조선이 직면한 상황을 '오선위기(五仙圍碁)의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다섯 신선이 함께 바둑을 두는 상황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한 사람은 한반도이고 네 명은 주변 4강국을 가리킨다. 전북 순창군의 회문산(回文山)에 호남 4대 명당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이 있는데, 이 명당에 국제 정세를 비유하였던 것이다. 주변 4강의 함수관계를 바둑에다 비유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바둑은 매우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게임 아닌가. 더군다나 5중(重) 바둑은 그 수가 중중무진(重重無盡)이어서 수읽기가 매우 어렵다. 그 수를 풀어보면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의 충돌 지점이다. 대륙의 풍(風)과 해양세력의 파(波)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라는 점이다. 임진왜란, 6·25, 그리고 현재 상황도 엄청난 풍파이다. 풍파를 등에 지고 살아야 하는 팔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당제국(大唐帝國)과 로마제국이라는 두 제국의 충돌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궁극적으로 미·중(美·中)의 충돌이다. 중국이 서방에 당했던 아편전쟁(阿片戰爭)은 청나라가 거의 망해갈 때 일어난 일방적인 전쟁이었다면, 지금의 중국은 전성기였던 대당제국 시절의 국력에 도달해 있다. 아편전쟁 시절의 약체가 아니다. 로마와 당나라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이다. 또한 미·중은 무역을 통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이 중국 제품 쓰지 않고 살 수 없는 상황이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버전으로 현 상황을 보면 이슬람과 북한의 핵·미사일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국면이다. 이슬람이 핵·미사일을 갖게 되면 이 또한 추측하기 어려운 복잡계(複雜界)로 들어간다.

만약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발생하면 아시아는 어떻게 될까. 유럽은 지금 놀고 있다. 세계의 제조업은 한·중·일 3국에 몰려 있는데, 이 기반이 붕괴할 것이라고 본다. 아시아가 타격을 받으면 재미 보는 쪽은 유럽일 것이다. 만약 북한 핵을 인정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칼(전쟁)과 돈(무역) 가운데 칼의 효용이 현저하게 약화되는 것일까. 바둑이 끝나면 바둑판과 돌은 결국 주인이 갖게 될 것이라고 강증산은 예언하였다.

/조선일보 DB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4/20170924019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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