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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한] 대통령의 詩 같은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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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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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한 뉴욕 특파원
김덕한 뉴욕 특파원

문재인 대통령의 21일(현지 시각) 유엔 기조연설은 한 편의 시(詩) 같았다. 서두에 "유엔은 인류 지성이 만든 최고의 제도적 발명품"이라 했고, 중반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로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전쟁의 기억과 상처는 뚜렷해지고 평화를 갈망하는 심장은 고통스럽게 박동치는 곳, 그곳이 2017년 9월, 오늘의 한반도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촛불'과 '평창올림픽'을 말하는 부분에선 시적 표현이 절정에 달했다. "나는 평창이 또 하나의 촛불이 되기를 염원합니다.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들었던 촛불처럼 평화의 위기 앞에서 평창이 평화의 빛을 밝히는 촛불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겨울 촛불 시위를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사례로 들면서 '촛불'이란 말을 열 번이나 썼다. 그렇게 이뤄진 정부의 대표로 유엔 무대에 섰다는 자부심도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그 촛불을 과연 세계인이 얼마만큼 이해할 것이며, 그 촛불을 평창올림픽과 연결시켜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지 의아했다. 평창올림픽으로 한반도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것이 한반도 위기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전략일 수도 없다.

유엔이 최고의 제도적 발명품이라는 말도 듣기 좋은 수사일 수 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평가다. 21세기 들어 유엔이 해결한 국제 분쟁은 거의 없고, 시리아에서 화학무기까지 동원돼 수십만명이 죽어도 강대국에 휘둘리는 유엔은 아무 소리도 못 한다. 대통령도 유엔의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미·중 양강의 힘 대결보다는 유엔에서의 다자간 협력을 통해 어떻게든 북핵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유엔에 대한 기대로 나타났을 것이다. 유엔 방문 첫 공식 일정으로 지난 18일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면담한 것도 한반도 긴장 완화에 그의 역할을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남북 관계에서 구테흐스의 역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청와대는 이날 면담 후 "사무총장의 대화 중재 노력에 한국 정부는 적극 호응할 것이라고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재'란 표현이 입안의 모래처럼 불편했다. '중재'는 분쟁을 벌이는 두 세력 간에 쓰는 말이지 국제사회에 정면으로 맞서 일방적 도발을 계속하는 북한을 상대로 쓸 말이 아니다. 구테흐스 총장은 중재가 아니라 대북 제재가 제대로 이행되도록 관리하는 일밖에 할 게 없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위기에 대한 유엔과 사무총장의 역할, 다자 외교 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자칫 미국더러 북핵 이슈에서 빠지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유엔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만행을 열거하면서 1977년 납치된 일본인 소녀는 거론했지만 천안함 격침이나 연평도 포격 등 대남 도발은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가 한반도 평화의 시를 쓰는 사이에 현실은 우리를 지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2/20170922029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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