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상황 등 종합 검토후 결정" 국내외 비판 여론 의식한 듯
국제사회 北제재 강화되는데 한국만 역행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
 

정부가 21일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800만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대북 지원이다. 다만 실제 지원 시기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남북관계 상황 등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 검토해 정하겠다"고 했다. 북한의 잇단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 강행으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가 채택된 상황에서 대북 지원을 계획하는 데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 주재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고 유니세프와 WFP (세계식량계획)의 북한 모자보건·영양지원 사업에 남북협력기금 800만달러를 공여하는 방안을 심의·의결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은 WFP의 아동·임산부 대상 영양 강화 식품 제공 사업(450만달러)과 유니세프의 아동·임산부 대상 백신 및 필수 의약품, 영양실조 치료제 지원 사업(350만달러)이다. 조 장관은 회의 모두발언에서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 지원은 분리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원칙이자 가치"라고 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대회의실에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교추협은 이날 북한에 800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조 장관 오른쪽은 임성남 외교부 1차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대회의실에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교추협은 이날 북한에 800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조 장관 오른쪽은 임성남 외교부 1차관. /오종찬 기자

그러나 실제 이 돈을 집행할 구체적 시기는 이번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았다. 통일부 입장에선 '대북 인도 지원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해서 추진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대북 여론이 극도로 험악해진 현실도 고려한 나름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서강대 김재천 교수는 "북한의 우방국들도 북한 제재에 동참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국만 엇박자를 내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에 꼼수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지원 시기를 못 박지 않은 것은 그동안 통일부가 대북 인도 지원의 '시급성'을 강조해온 것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대북 인도 지원 계획은 지난 14일 처음 발표됐을 때부터 '시기의 적절성' 논란에 휩싸였다. 6차 핵실험(3일)을 강행한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 2375호가 만장일치로 채택(12일)된 지 이틀 만에 한국 정부 홀로 대북 지원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은 대북 지원 계획 발표 이튿날(15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형 중거리미사일 화성-12형을 일본 상공을 관통해 3700㎞ 날려 보냈다.

우리 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북한의 연이은 중·장거리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만 3건의 고강도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가 채택되고 각국의 북한 대사 추방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한국만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에 역행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대북 지원의 시점을 문제 삼았고, 미 국무부도 "(대북 지원 문제는) 한국 정부에 문의하라"고 하는 등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시기의 적절성을 떠나 대북 인도 지원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김진무 숙명여 대 교수는 "인도적 지원을 해봐야 간부들만 먹고 독재정권을 강화시켜 주게 된다"며 "김정은에 핵미사일 강화하라고 지원해 주는 꼴"이라고 했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도 최근 본지 칼럼에서 "북한의 경제난은 외부 지원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내부 분배 왜곡에서 비롯된다"며 "미사일 개발에 들이는 공(功)의 절반만으로도 북한 식량난은 진작 해결됐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2/20170922003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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