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당내에서 합의 이루고 지지층 아니어도 귀 기울이고 미·일·중·러 설득에 나서야
北과 대화는 더 준비 필요… 여야 협치 모습부터 보이길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태평양 쪽으로 기세 높게 쏘아 올린 지 한 시간 만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는 대화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진정한 대화의 길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국제사회가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뜻의 말을 했다. 이에 대해 여당 성향의 한 신문은 대통령이 아직 '대화 해법 포기하지 않은 듯'이라는 논평을 내놨다.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를 결의한 분위기 속에서도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발표했고, '전쟁 불가, 흡수 통일 불원'이라는 메시지로 북한을 다독이고 있다. 행여 대화의 길목이 막힐까 살피는 모습이 눈물겨울 정도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참여 정부'였다면 지금 정부는 가히 '대화 정부'라고 할 만하다.

막상 북한은 "쥔 것도 변변치 못한 주제"라며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미국과 맞짱 뜨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은 우리를 대화 상대로도 여기지 않는다. 대화란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수평적 관계에서 가능한 일인데, 대통령 말대로 지금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는 불가능해 보인다. 남북 간 불균형이 지속되는 한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가 통할 때 결혼도 생각한다. 남북이 대화가 된다면 굳이 갈라져서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둘(dia) 사이의 말(logos)을 뜻하는 대화(dialogue)는 그저 말을 주고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변증법(dialectic)'이라는 말이 대화에서 유래했듯 철학자는 대화를 통해 진리를 탐구했고, 외교관들은 대화를 통해 전쟁을 막았다. 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은 각국의 잦은 왕래와 풍성한 대화의 기초 위에서 평화를 구가했다. 로마시대 웅변가 키케로의 표현대로 말이 곧 고요의 동반자요 평화의 도구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백번 옳다. 돈(거래)이나 압력(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짜 대화라면 더욱 그렇다.

기술의 발달로 각종 기계가 '접속'의 편리를 제공하지만 대화는 여전히 어려운 고급 기술이다. 대화는 참을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매우 정교하고 복합적이며 인간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화가 돼야 설득과 타협도 가능하다. 걸음마를 배우듯 대화의 기술을 익혀야 관계 짓기와 공동체 유지에 성공해 마침내 인간다움을 완성할 수 있다.
1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 대표가 야당을 향해 거칠고 원색적 표현을 서슴지 않자 또다시 불신과 불통의 늪으로 빠져드는 정치권의 악순환을 지켜보며, 그 정도 수준의 정치인들이 과연 대화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서로 대화도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재주로 협치를 하며, 이해관계가 조금만 어긋나면 자기편끼리도 대화를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이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맞대며, 심지어 대화를 원하지도 않는 상대를 테이블로 불러낼 수 있을까. '대화'가 고급스럽고 어려운 기술임을 안다면 어설프게 대화를 입에 담기 이전에 겸손하게 배우려 노력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어떤 단어를 선별해야 신뢰를 주며, 어떻게 경청해야 진심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 훈련해야 한다. 서점에 가면 각종 이론서와 실무서가 쌓여 있고 코칭 프로그램들도 다양하다. 읽고 학습하고 연습한 후 실전에 적용해 기술을 쌓아야 한다. 정치인에게 대화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다.

대화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생각이 유사한 사람들끼리 대화를 통해 갈등을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정당이라면 먼저 당내에서 대화로 합의를 이뤄야 하고, 그걸 바탕으로 다른 당과의 현안도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책임 있는 집권 세력으로서 여당은 야당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각종 문제를 해결하고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뿐 아니라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과도 대화해야 한다. CNN 같은 외신을 통해서 대통령의 생각을 우회적으로 듣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국내 현안이 정돈되면 주변 우방과 대화해야 한다. 일본과 대화해야 하고, 미국과 대화해야 한다. 한·미·일, 한·일, 한·미 어떤 형태로든 대화의 축을 공고히 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에 적극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 일을 가장 잘할 사람들을 외교 무대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어느 한 곳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주변 강국들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그들과 같은 차에 동승할 수 있다. 운전석에 앉는 것은 그다음 대화를 통해 해결해도 늦지 않다.

북한과의 대화는 좀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같은 사회 안에서도 대 화가 힘든데 적의를 품은 전혀 다른 체제와 대화한다는 게 어떨지 상상조차 어렵다. 체제 보장, 흡수 통일 반대, 전쟁 반대, 전술핵 반대 같은 카드를 전부 보여주어 더 할 말이 남아 있을까도 싶다. 분명한 건 지금 고민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현재 진행 중인 정기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서로 대화를 통해 입법 전쟁을 협치로 풀어내는 모습부터 보여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9/2017091903216.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