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전술핵 재배치'는 正答인가… 위성락 前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전술핵이 답은 아니다,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이나
괌 상공서 폭격기로 때리든 잠수함으로 쏘든 마찬가지"

"핵실험과 한·미 군사훈련을 함께 중단하자는 '쌍중단'은 북한의 입장…
여기에 중국이 '쌍궤병행' 추가해 협상 제안"
 

최악의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안 되고,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 꼭 해답이 아니다. 외교부 재직 시절 대표적 '정책 전략통'으로 꼽혔던 위성락(63)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난 것은 우리가 가진 '통념(通念)'을 깨기 위해서였다.

미군 전술핵 재배치 논쟁으로 시작할까 한다. 열흘 전 나는 "핵 균형 말고는 우리 일상을 정상화할 방법이 어디에도 없다. 미국과 협상해 전술핵 재배치를 이뤄내야 한다"는 취지의 칼럼을 썼다. 전술핵 재배치 찬성 여론은 반대보다 더 높아졌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미 CNN 인터뷰에서 "미군의 전술핵 반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의 군사행동에 우리는 리스크를 감당할 준비가 됐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문 대통령이 이런 대북 압박 카드를 공개적으로 포기하는 발언은 옳았나?

"내가 뭐라고 말하기 그렇다."

―미군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입장은?

"북핵 문제에 좌절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전술핵이 답은 아니다. 오히려 실익이 별로 없다. 한반도에 배치하든 괌 상공에서 폭격기로 때리든 동해안에서 잠수함으로 쏘든 마찬가지다. 핵 대응 여부는 미국의 결정에 달렸다. 굳이 한국에 다시 들여와 분란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본다. 미국에서도 주류적인 담론은 재배치 반대다."

그가 현 정부에 기울어있다고 판단할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북미국장으로서 북핵 업무를 담당했다가 미국과의 관계 설정을 놓고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이 벌어져 보직 해임된 적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처음으로 '비핵화(非核化) 남북 회담'을 성사시켰다. 러시아 대사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에서 '핵무기론'을 강의하고 있다.

―외교관 출신들은 "현실적으로 핵은 안 된다"고 여기는데, 우리 머리 위에 놓인 북핵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본질은 핵 균형 말고는 북핵에 맞설 다른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핵이 아니면 억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래서 핵을 가진 동맹국(미국)으로 억제하면 된다."

―미국의 '핵우산'을 믿을 수 있느냐다. 북한이 핵 도발 했을 때 미국은 자신의 국익과 3차 대전 확산 우려를 계산할 것이다. 우리의 기대와 합치할 것으로 보나?

"동맹에서 두 가지 딜레마가 있다. 너무 휘말려 들어가거나 아예 버림받는 것이다. 북한 미사일의 미국 타격이 가능해지는 상황에서 후자를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이 동맹 구도를 바꿔버릴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미국과 협상하면서 '핵우산' 약속을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6차 핵실험 이후 국민은 북핵 위협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국민이 매일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정부는 해결해줘야 할 책임이 있지 않은가?

"6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 결의안은 내 기대에 못 미쳤다. 북한에 공급하는 기름에 손댄 것은 처음이지만, 원유는 현 수준 동결이고 정제유만 절반 줄였다."

―현실에서 제재 압박은 먹혀들지 않았다. 북한의 태도를 전혀 바꾸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북한을 절름발이로 만드는 상태까지 안 갔다. 중국과 러시아는 동조하면서도 제재와 압박은 막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계속된 도발은 중·러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지정학적 판단을 기준으로 북한을 편들어온 중·러의 셈법을 바꾸도록 설득해야 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어느 한 진영에 확고하게 서야 한다. 현 정부는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여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도 신뢰를 못 주는 것 같다.

"정권 초반이라 내부 지지자의 열기와 국제 현실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점점 현실에 적응하고 수용해가고 있다고 본다. 내부 반발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여권의 외교 전략통은 "북한의 핵 보유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했는데.

"북한의 핵 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현실적 접근이지만, 핵 보유 인정은 맞지 않는다. 표현에 주의해야 한다. 인도ㆍ파키스탄이 핵을 보유한 것은 천하가 다 알지만 핵보유국은 아니다. 핵보유국 지위를 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외교관 출신은 북핵 문제에 전가보도(傳家寶刀)처럼 협상을 꺼낸다. 과거 협상이 거의 모두 실패로 결론 났는데도 말이다.

"현재로는 협상을 제의하는 것이 시의적으로 맞지 않는다. 하지만 크게 보면 지금도 협상으로 가고 있는 국면이다. 협상을 위한 진지 구축, 고지 점령전이 벌어지는 중이다. 6·25 때 판문점 협상을 위해 150마일 DMZ에서는 1년 넘게 전투가 계속됐다. 협상과 제재 압박이 한 몸이라는 뜻이다."

―협상력을 키우려는 전투인데, 현 정권이 하는 것을 보면 과연 그런 생각조차 있는지 모르겠다. 제재 압박 타이밍에 대화 카드를 꺼내 동맹국 간에 혼선을 낳고 북한에는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 정권 초기이니까 내부 지지 기반의 주문에 응할 수밖에 없는 점이 있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푸틴에게 '원유 공급 중단해야 한다'고 요청하는 걸 보면 현실적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최보식 선임기자와 위성락 前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6차 핵실험의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가 채택된 지 불과 이틀 뒤 '800만달러 대북 지원 검토'를 발표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 직후 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화답했다. 최악 위기 상황에서 우리 정부만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상황이 어색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중심축은 한·미·일 동맹에 있다고 본다."

―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북핵 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축소'를 연계하는 방안을 언급했는데?

"핵실험과 한·미 군사훈련을 함께 중단하자는 '쌍중단(雙中斷)'은 당초 북한의 입장이었다. 중국이 여기에다 비핵화 협상과 평화 협상을 동시에 하자는 '쌍궤병행(雙軌竝行)'을 추가했다. 지금 우리로서는 받기 어렵다. 북한 역시 중국의 '쌍궤병행'안에는 반대한다. 북한은 2013년 이래 핵 포기를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비핵화 협상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단지 자신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폐기하는 평화 협상만 하자는 것이다.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북한과의 협상은 자칫 정처 없는 여행이 된다."

―북한은 핵 문제로 협상을 안 하겠다고 선을 그었는데, 우리 쪽에서 협상 카드를 계속 꺼내는 것은 헛발질 아닌가?

"이 때문에 중국은 '조건 없는' 협상을 주문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하면 북핵을 인정해주는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물론 사전에 조건 없이 막후 접촉은 할 수 있겠지만. 내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맡고 있을 때 '비핵화 회담의 사전 조치(pre-step)'를 위한 남북 협상을 두 차례 가졌다. 지금까지 그게 마지막 남북 협상이 됐다."

―'사전 조치'를 위한 협상이 뭔가?

"오바마 정부는 출범 초 미·북 회담을 추진했다. 2009년 말 보스워스 특사를 평양에 보내 협상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북한의 '천안함' 도발로 우리 군인 46명이 숨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북·미 간 협상 진행을 수용할 수 없었다. 북한에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고 정전협정을 준수한다'는 확답을 먼저 받고서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워싱턴에 가서 '북한의 사전 조치를 받아내는 협상을 우리가 먼저 하고 교대로 미국이 받는 식으로 하자'고 말했다."

―북한이 이런 조건을 받아들였나?

"북한은 자신의 핵 협상 상대를 미국으로 본다. 우리와는 핵 문제를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가 미국을 확실하게 붙들고 있었다. 러시아도 내 방안에 찬성했고, 중국은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결국 북한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였다."

―협상 진척은 어땠나?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이용호 차관(현 외무상)을 만났다. 그는 '협상을 하려면 조건 없이 해야지'라고 말을 꺼냈지만 두 시간 만난 뒤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2주일 뒤에는 미·북 협상이 있었고 다음은 우리 차례였다. 그때 나는 러시아 대사로 발령이 났지만 이를 미루고 중국 베이징에서 한 차례 더 협상했다. 그 뒤로 남북 협상은 없었고, 3차 미북 협상에서 북한은 '사전 조치'를 모두 수용했다. 대신 식량 24만t을 받기로 했다."

―그 뒤 비핵화 협상으로 진전됐나?

"북핵 문제를 다룰 6자 회담으로 가는 걸로 되어있었는데, 그해 말 김정일이 사망했다. 김정은 체제는 한 달 만에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북한은 '평화적인 위성 발사이므로 합의 위반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전 조치'를 깬 것이었다. 그걸로 협상은 끝났다. 김정은은 2013년 핵실험을 한 뒤 '핵·경제 병진 노선'을 발표했다. 더 이상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나왔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지 못하는데 무슨 수로 북핵 문제를 협상으로 풀 건가?

"북한은 핵ㆍ미사일 능력의 완성 단계가 되면 미국과 담판을 벌일 것이다. 미국이 조건 없는 협상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사전 조치'를 제안할지 알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협상이 이뤄진다고 해도, 협상으로 북한이 다 만들어놓은 핵무기를 포기하겠나?

"긴 시간이 걸리는 싸움이다. 중·러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 5대1 구도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 내부의 변화가 생기거나 우발적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은 북한이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고 본다."

―낙관적 전망이다. 현실은 북핵이 계속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이다. 핵을 가진 북한과 우리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보나?

"어렵다.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현 정권의 외교 전략가들도 임시방편 협상을 말할 뿐,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없는 것 같다.

"미군 전술핵 재배치는 앞서 말한 대로 실익이 없다. 굳이 다른 방법을 찾는다면 미국의 군사적 행동이다. 미국이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과연 어느 정권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 과거 김영삼 대통령 때도 결사반대했다. 또 다른 방법은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이다. 이는 북한 편에 서온 중국의 셈법을 바꾸게 할 것이다. 하지만 독자 핵 개발은 너무 엄청난 리스크가 있어 채택하기 어렵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7/2017091701605.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