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시해왔던 美 싱크탱크들, 이젠 안보·협상 카드로 거론]

- "전술핵 반대"가 더 많긴하지만…
트럼프 정부와 가까운 전문가들 "미국 전술핵 한국에 재배치하고 핵 정보·사용권은 공유하면 돼"

- "北·中 자극해 안보 불안만 가중"
"중국 가만히 안 있을 것이고 北도 선제공격 유혹 느낄 것… 美, 배치할 전술핵·인력도 없어"

- 한국, 美를 못 믿는게 문제?
"미국 전략자산 추가배치와 미사일 방어확충이 현실적 대안"
 

강인선의 워싱턴 Live
지난 7일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가 갑자기 기자들을 상대로 북한 문제에 대한 전화 브리핑을 자청했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인 9일 도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한창 고조된 시점이었다. 이 관리는 군사적 방안을 포함한 강력한 대응 의지를 짤막하게 밝히고 질문을 받았다. 이날 브리핑이 진행된 30분 동안 '한국의 전술핵 재도입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두 번이나 나왔다. 이 관리의 대답은 두 번 다 모호했다. "가능한 모든 방안을 고려 중이지만 구체적인 내용까지 언급하진 않겠다"고 했다. 다음 날부터 트럼프 행정부가 한·일 독자 핵무장과 전술핵 배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10일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에서 한국의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도입은 오랫동안 금기어였다. 전·현직 관리는 물론, 싱크탱크 전문가들도 "한국이 또 하나의 북한이 되겠다는 거냐. 말도 꺼내지 말라"며 정색하던 주제였다. 하지만 최근엔 온도가 약간 달라졌다. 여전히 '불가하다'는 의견이 강하지만 북핵 해결이 난망한 상황에서 한국 안보를 위해, 또 중국에 대한 협상 카드로서 거론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가까운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북핵 해결에 실패하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전술핵을 고려해봤다"는 얘기가 나온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 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지난달 21일 인터뷰에서 "만일 북한이 핵무기를 배치하는 수준까지 가면 한국도 핵무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이 논리적인 결론"이라고 했다. 크로닌 소장은 "나토(NATO)식 듀얼키(dual key)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고 핵 정보와 사용권을 한·미가 일부 공유하는 나토식 핵 공유 시스템 등 여러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한국의 재래식 무기 수준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왼쪽부터)크로닌 소장, 퓰너 이사장, 클링너 선임연구원, 디트라니 前차석대표.
(왼쪽부터)크로닌 소장, 퓰너 이사장, 클링너 선임연구원, 디트라니 前차석대표.
워싱턴의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에드윈 퓰너 이사장도 지난달 본지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전술핵 재배치는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비핵화된 한반도가 이상적이지만 한쪽이 약속을 어길 경우 다른 한쪽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수미 테리 전 미 중앙정보국(CIA) 북한 분석관도 최근 본지 기고에서 "다른 모든 옵션이 실패하고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한국과 일본은 독자적인 핵 보유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면서, "한·일 독자 핵 보유, 전술핵 재배치도 고려할 수 있는 선택 사안"이라고 했다.

전술핵 재배치는 군사적으로 별 효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반도 안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란 주장도 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 연구원은 지난 4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전술핵 재도입이든 자체 핵무장이든 군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태평양에 배치한 전술핵무기는 군함, 잠수함, 항공기에 배치된 이동형으로 북한이 파악하기 어려워 공격 목표로 삼을 수 없는데, 이런 이동형 무기를 한국의 지하 벙커에 두게 되면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배치 위치가 고정되는 순간 숨기기 어려워 북한이 위기 시 선제공격의 유혹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벙커에서 발사대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유사시 대응 시간도 길어질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도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전문가들은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전반적으로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에 육상 배치할 수 있는 전술핵을 갖고 있지 않으며, 설사 있다 해도 전술핵을 배치·보호·운용할 인력을 훈련시킬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전술핵이 한국의 안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했다. 전술핵은 북한에 또 하나의 타격 목표를 주는 셈이라 북한으로선 더 큰 공격의 유혹을 느낄 것이고, 핵물질을 갖는 것 자체에서 오는 위험 부담도 있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한국의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중국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동북아 안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한국의 안보 불안을 해결하는 일차적인 방안은 미국의 전략 자산 추가 배치와 미사일 방어 확충이란 것이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 주장에 힘이 실리는 배경엔 미국에 대한 불신이 있다고 본다. 조셉 디트라니 전(前) 6자회담 차석대표는 11일 "한국이 전술핵무기를 재도입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확장 핵억제는 동맹의 일부이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위해 핵우산과 확장 억제를 제공하기 위해 거기 있다. 차라리 전략 자산을 추가 배치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한국인들이 미국의 방어 공약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미국의 약속은 강력하다"면서 "미국이 그냥 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만일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고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핵폐기를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되면, 그때는 한국과 일본도 자체 핵능력을 가지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전술핵 재도입 가능성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애매한 입장을 보이는 것을 두고 한 전직 미 행정부 관리는 "중국에 대한 협상 카드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중(對中) 협상 카드라는 것 외에 한국이 전술핵 재도입 고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했다. "주한 미군이 이미 미국의 자동 참전을 보장하는 인계철선(引繼鐵線)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는 미국의 핵우산으로 충분히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5/20170915002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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