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 글지기 대표
양해원 글지기 대표

어허, 정보가 깨알인데 TV 보다 졸면 쓰나. 저 친구 마지막 연애가 10년 전이라잖아. 그래도 독신으로는 안 살 거라는데? 김 아무개가 이 아무개랑 아주 친하군. 딸도 연예인이네. 박 아무개는 빚이 수십억이었다니. 그나저나 저 식당은 한번 가봐야겠어….

이른바 예능(藝能·예술적 재능) 프로그램. 가수나 연기자(운동선수도 있다)가 잔뜩 나오니 뭔가 보여주려나 싶지만. 노래 한 자락도, 독특한 표정 연기도 없다. 사담(私談) 주고받으며 마냥 웃고 먹고 즐길 뿐. 출연진만 그쪽 출신이지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 어째서 이게 예능인가. 오락(娛樂)이요 유흥(遊興)이지. 뭐 그리 시답잖은 걸 말꼬리 잡느냐고? 그럼 정말 심각한 일로 따져보자.

북한이 중거리탄도탄을 쏜 다음 날 신문 기사 한 토막. '북한은 한국 정부의 대화 분위기 조성 노력을 농락이라도 하겠다는 듯 더 큰 미사일로 확실한 전략적 도발을 한 셈이다.' 농락(籠絡)이 뭔가. '교묘한 꾀로 상대를 휘어잡아 멋대로 놀리거나 이용함', 속된 말로 갖고 논다는 뜻이다. 닷새 뒤 핵실험까지 벌였으니, 농락이랄 수도 있겠다.

문제는 글의 맥락. 대화로 풀고자 하는 노력을 비아냥대듯 미사일을 또 쏜 상황이므로 농락보다 조롱(嘲弄·비웃거나 깔보며 놀림)이 맞춤하다. '노력을 농락하다/조롱하다' 이렇게 견줘봐도 그렇고. 농락이란 표현이 들어맞으려면 "그래, 만나자" 했다가 멋대로 뒤집거나, 다시는 미사일 안 쏜다 해놓고 쐈다거나 해야 한다.

사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서는 농단(壟斷)보다 농락이 어울린다. 농단은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인데, 그보다는 나랏일을, 사람을 쥐락펴락했으니까.

오락 프로에서 채널을 돌려본다. 금지선, 유엔 제재, 재도발, 선제공격, 공포의 균형…. 두려움이 꿈틀대지만 문제없다. 나라가 조롱당한들, 핵탄두가 대롱거린들 무슨 걱정인가. 한두 채널만 건너가면 다시 희희낙락(喜喜樂樂) 대한민국인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4/2017091403464.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