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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열] "권력자의 분노는 피바람을 일으킨다"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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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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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與, 헌재소장 부결에 분노
野 향해 "땡깡"이라 하고 과거 일 재수사 가능성도 언급
분노는 권력의 역할 아니야
힘 가진 자에게 正義는 뭔지 '無知의 베일'에서 생각해봐야
 

권대열 정치부장
권대열 정치부장

여권(與圈)은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야당에 분노하고 있다. 청와대는 "무책임한 다수의 횡포"라고 했다. 민주당은 더 노골적이다. "골목대장" "탄핵 불복"에 "땡깡"(생떼)이라고까지 했다. '이명박·박근혜 권력형 취업 비리 청탁 관련 국정조사 및 검찰 재조사'도 거론했다. 그러자 다음 날 국무총리는 외교·안보 분야 문제를 토론하기로 돼 있던 대정부 질문장에서 홍준표 한국당 대표에 대한 수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야당에는 '보복 협박'으로 들릴 수 있다.

집권 세력의 분노를 보며 대선 때 안희정 충남지사가 문재인 당시 경선 후보에게 "분노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시 안 지사는 어느 자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도 선한 의지로 국민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안 지사 말에는 분노가 담겨 있지 않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다시 "지도자의 분노는 피바람을 일으킨다"고 받았다.

현 여권은 "우린 집권한 뒤에 정말 많이 참고 양보도 많이 했다. 분노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정부에 세워진 과거사 관련 TF가 몇인가. 이미 쑥대밭이 된 박근혜 정부를 다시 찌른 칼끝은 이명박 정부도 겨누고 있다. 전두환을 지나 박정희·이승만 정권, 일제강점기 일도 손을 댄다. 그렇게 "정의를 바로 세운다"며 과거로 향했던 분노의 시선이 이젠 현재의 야당들로도 돌아간 건 아닌가 싶다. 정권 출범 후 여러 사안에서 협력해줬던 국민의당에 청와대와 민주당은 "적폐 세력"이라고 하고 있다. 국민의당에 맡겨 놓았던 표(票) 있나. 국민의당은 대통령 하라는 대로 해야 하나. 소수 야당이 반대표 한번 던졌다고 "야합" "땡깡"이라고 하면서 "협치하라"고 하는 건 요청이 아니라 위협으로 보일 수 있다. 정작 이 나라와 현 정부를 가장 어렵게 만든 건 북한이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렇게 "대화로 풀자"고 했는데도 걷어찼다. 분노해야 한다면 거기가 1번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잠시 분노하다가 "그래도 대화해야 하고 함께 가야 한다"고 아량을 보인다. 북한을 감싸는 중국에 대해서도 "자극해서 전략적으로 좋을 게 없다"고 한다. 야당과 과거 정권이 이들보다 더 분노해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전략적 쓸모가 없어서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안 지사와의 논쟁에서 '분노'와 함께 '정의'를 얘기했었다. 그러면 과연 이 정국에서 권력을 가진 쪽이 이렇게 분노하는 건 정의일까. 정의론(正義論)의 대가 존 롤스가 '무엇이 정의인가'를 논(論)하고자 만들었던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란 도구를 써 보자. 앞에 큰 베일(장막)이 가리고 있고, 자신이 그 너머 세상으로 나갔을 때 어떤 자리에 서게 될지 모르는 정치인이 있다. 그의 앞에 "대통령은 '국회 탓' '야당 탓'을 하면 안 된다. 남 탓하기 전에 '내 탓이오' 할 수 있는 용기부터 배워야 한다"는 입장이 놓여 있다. 이 입장을 자신이 쓸 '무기'로 선택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자기의 소신으로 들고 나갔는데 '권력자'의 자리가 주어진다면 오히려 불편해진다.

그렇더라도 대부분의 건전한 생각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권력자는 '내 탓이오' 자세를 갖는 게 옳다(정의)"고 생각하고 그 입장을 선택할 거다. 자신이 어떤 위치가 될지 모르는 상태(무지의 베일) 속에서도 많은 상식인이 선택할 쪽, 권력의 공정한 분배라는 측면에서 택해야 할 그쪽이 '정의'인 것이다. 롤스의 방법론을 이런 식으로 적용하는 게 학문적으로 적합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남을 탓하고 남에게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이가 '정의'에 더 가까운 지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믿는다.

사실 "대통령은 '내 탓이오' 할 수 있는 용기부터 배우라"는 말은 현 집권 세력이 야당 때 했던 주장이다. 2015년 5월 새정치민주연합이 박수현 당시 원내 대변인을 통해 냈다. 그 논평에선 "청와대가 진정 국민을 위하고 삼권분립 정신을 지키고자 한다면 국민대표 기관인 국회 결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했다. 박 대변인은 지금 청와대 대변인이고, 그때 당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본인들이 '무지의 베일' 뒤에 있을 때 생각했던 정의는 그런 거였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표결이 곧 있다. 정기국회에서 내년 예산도, '개혁 입법'도 해야 한다. 좋든 싫든 야당도 국민대표고, 앞으로도 3년 가까이 함께 가야 한다. '선(善)한 의지'로 하는 일이더라도 권력은 분노로 관철하면 안 된다. "피바람을 일으킨다"는 동지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3/20170913033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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