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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24년 전 제네바, 기억하기도 싫은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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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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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북·미 회담 때의 한국, 핵 당사자인데도 제3자 신세
경수로 건설 부담만 떠안아… 또 무시당하고 몸값만 낼 건가
 

김광일 논설위원
김광일 논설위원

24년 전 여름이다. 그해 유럽 공기는 답답했다. 명칭도 없는 그냥 미·북 회담이 제네바에서 지루하게 진행됐다. 로버트 갈루치 차관보, 강석주 부부장이 양쪽 대표였다. 당시 주불(駐佛) 특파원이 제네바를 커버했다. 우리는 뫼벤픽 호텔에 묵었다. 회담은 미·북 대표부 건물을 오가며 번갈아 열렸다. 양쪽 대표단은 점심도 같이 먹고 칵테일 리셉션을 갖기도 했다. 기자들은 대표부 밖 길바닥에 서성거렸다.

북한은 IAEA 사찰에 원칙이 없다며 버텼다. 미국은 북한이 넉 달 전 탈퇴 선언한 NPT로 되돌아오길 바랐다. 기사는 썼으나 애매했다. 한국 기자에겐 직접 취재원이 없었다. 갈루치는 입을 닫았다. "한국 대표부에 물어보라"는 것이다. 강석주는 "조선반도 핵 문제 전반에 대해 논의했다"고만 했다.

저녁에 미국이 한국을 따로 불러 백브리핑을 했다. 그러면 미국 대표부에서 돌아온 한국 관리가 비로소 기자에게 설명했다. 우리는 두 번 걸러진 정보를 귀동냥했다. 논리적 연결이 안 되는 파편적 정보가 횡행했다. 한국은 한반도 안보의 '직접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제3자'라는 이중 구조에 끼어 있었다.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는 북한 공관 회담장을 떠날 때 유럽 기자들이 "어떻게 된 거냐"며 한국 기자의 소매를 붙들었다. 차마 "우리도 제3자"라고 말할 순 없었다.

미국은 1960년대 유럽 여러 나라에 핵을 배치했다. 탄도미사일 발사 특수 키와 암호를 공유했다. 그런데도 프랑스는 1960년 사하라 사막에서 핵실험을 강행했다. 몇 년 뒤 프랑스는 나토 통합사령부를 탈퇴했다. 미국 핵우산을 쓰고 있던 주변국은 프랑스에 왜 독자적인 핵 억지력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드골이 쏘아붙였다. "그래야 우리도 군축 회담에 초대될 것 아니오."

앞으로 전개될 한반도 핵 문제도 비슷한 본질을 안고 있다. 김정은이 핵 유훈을 절대 포기할 리 없으니 동북아 핵 군비 경쟁도 불가피할 것이다. 그게 큰 흐름이다. 안보리는 결의안·의장성명·언론성명 셋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를 놓고 '영혼 없는' 입씨름을 벌일 것이다. 중국·러시아는 치명적 대북 제재가 없을 때만 국제 공조에 참여할 것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에 대해 '존경한다' '분노한다'를 오락가락하다가 러시아 밀통 의혹, 헬스케어 실패 같은 국내 문제에 발목이 잡힐 위험이 크다.

북한이 28일 밤 실시한 대륙간 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미사일 2차 시험발사 모습. /연합뉴스

극동 군비 경쟁의 클라이맥스는 일본 핵무장 가능성에 닿아 있다. 북한이 소형 핵탄두와 ICBM을 완성하고 탄두 보유량을 늘려 가면 주한 미군은 전술핵을 들이고 일본 핵도 논의 테이블 위에 오를 수 있다. 중국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겠으나 북핵을 만류하지 못한 책임에 묶일 것이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평양 참수작전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낮다. 중국은 지난 3월 미국 네이비실의 빈라덴 암살작전을 그대로 재현하는 특수부대 훈련을 공개한 바 있으나 평양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미국도 한국도 김정은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내놓는 데 실패할 때 진짜 시나리오가 시작된다. 거절 못 할 제안이란 북이 미사일을 한 번만 더 쏘면 한국이 핵전략사령부 창설을 위한 입법 발의에 들어가고, 북이 '핵 동결―폐기'의 수순을 약속하면 매년 10억달러를 공여한다는 정도의 최후통첩이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발 한쪽을 낭떠러지 바깥에 내밀 만큼 극도로 민감해졌을 때 미·북이 전격적인 뉴욕 협상을 개시할 수 있다. 최선희와 조셉 윤 같은 국장급 접촉이 있은 뒤 고위급으로 옮아갈 것이다. 북한이 갑 노릇 을 하는 빅딜이다. 그때 추억하기도 싫은, 24년 전 제네바의 필름이 다시 돌아가고 한국은 또 백브리핑이나 듣는 국가가 될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를 '짐짓' 무시할 것이다. 빅딜이 '인질 협상' 비슷하게 이뤄질 때 협상 테이블은 구경도 못 한 한국 정부가 몸값을 내야 할지 모른다. 20년 전 함남 경수로 건설과 KEDO 지원 때 그랬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31/20170831034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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