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호주 덴마크 등 30여국, 정보기관에 안보 관련 수사권 줘
외풍 없이 수사 전념 가능하도록 여건 조성해야 진짜 국정원 개혁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북한의 핵실험과 잇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으로 한반도 안보 상황이 엄중하다. 노동당 규약에 명시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전략'도 우리를 향해 여전히 변함없이 전개되고 있다. 대공(對共) 수사권은 이 같은 대남 혁명전략과 그 실행 수단인 대남 공작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하나이다. 현재 정부·여당은 '적폐 청산'을 내세워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을 폐지해 다른 기관에 이관하거나 별도의 기구 설치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작금의 안보 상황에 맞지 않고 간첩 사건의 특수성에 비춰 보아도 부적절하다.

우선 철저한 훈련과 신분 세탁을 거쳐 잠입하는 간첩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첩보 수집 및 내사, 외국 정보기관과의 협력 등 일반 범죄를 수사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업무 영역과 전문성이 요구된다. 외사·보안·방첩, 대북 공작, 정보 협력, 사이버 활동, 과학 장비, 탈북자 신문(訊問) 등 모든 역량이 동원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의 추적을 통해 조직·배후의 전모를 밝히려면 보안 유지가 필수적이다. 간첩의 '확신범'적 성격,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묵비권 행사 등 신문 투쟁, 정식 수사 단계에서는 사실 관계 확인밖에 하기 어려운 시간상의 제약도 대공 수사의 특징이다. 수사권 없는 정보 활동만으론 간첩 검거를 기대할 수 없는 게 대공 전선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첨단 과학수사 장비, 50년 이상의 수사 노하우와 전문 인력, 국내외 첩보망을 갖춘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은 유지돼야 한다.

경찰은 대공 수사를 담당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내외 및 북한을 연결하는 입체적인 종합수사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좌익 세력의 공안 사건 수사에 더욱 적합하다. 검찰은 수사 지휘와 공소 유지를 주 임무로 하는 기관으로 선거사범·노동사건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대공 수사에 전념할 수 없다. 현장 수사 인력 및 장비가 태부족하고, 최초 범죄를 인지(認知)해 처리한 전례가 없는 등 간첩 사건에서 1차 수사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검거된 60여 명의 간첩 중 국정원의 대북 및 해외 정보·수사 활동으로 적발된 간첩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경찰 또는 검찰로 대공 수사권이 이관될 경우 안보 공백이 불가피하다. 한편 새로운 기구 설치 방안은 대공 수사를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의 구축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감은 물론, 업무의 연속성과 효율성의 면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초래할 것이다.

국정원 전경. /조선일보 DB

일부에서는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대공 수사권 폐지를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프랑스,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호주, 싱가포르 등 30여 나라의 정보기관이 국가 안보에 관련된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중국, 베트남, 예멘 등 분단 경험이 있거나 분단 유사 상황에 있는 나라들은 정보기관에 수사권을 부여하고 있다.

국정원이 유우성 간첩단 사건 수사에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대공 수사에서 이룩한 업적을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공 수사권은 국가보안법과 함께 '체제 안보' 곧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한 보루이다. 적폐란 오랫동안 쌓여온 폐단이라는 뜻인데, 대공 수사권에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북한은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의 대공 수사권을 폐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 여권이 북한의 요구에 영합하는 행동을 하려는 것은 심히 우려할 만한 일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것이다.

대공 수사관들이 정치적 외풍을 받지 않고 간첩 수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되, 적법 절차를 준수하는 인권 수사를 독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정원 개혁일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30/20170830037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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