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새벽 6시 2분. 일본 홋카이도와 동북(東北) 지역 12현(縣) 전역에 긴급 대피 경보가 발령됐다. '미사일 발사, 미사일 발사, 북한으로부터 미사일이 발사된 것 같습니다. 지하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가 이 지역 모든 주민 휴대폰으로 경보음과 함께 일제히 발신됐다. 북한이 일본 상공 너머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 불과 5분 뒤였다. 행정 단위별로 사이렌도 울렸다. 재난 주관 방송 NHK도 이 소식을 전국에 즉각 알리기 시작했다. 유도 경기를 내보내던 TV아사히를 비롯해 거의 모든 민영방송도 즉각 이 소식으로 전환했다.

▶일본이 전국 동시 경보 발령 시스템 'J얼러트' 구축을 시작한 것이 2004년이다. 지진·쓰나미·화산분화 같은 자연재해와 함께 북 탄도미사일이 경보 발령 대상 매뉴얼에 올라 있다. 'J얼러트'가 실제 발령된 것은 2012년과 2016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러나 과거 두 차례 경보는 모두 오키나와 섬 한 곳에 국한됐고 이번처럼 도-현 12곳에 광범위하게 전달된 것은 처음이다. 예고 없는 발사였고 첫 경보 발령이었지만 일본의 관·민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북 미사일 발사 당시 홋카이도청에는 두 공무원이 당직을 서고 있었으나 새벽 6시 좀 넘자 관련 정보를 수집하거나 피해 상황을 확인하는 사람이 열댓 명으로 늘어났다. 민영방송들은 경보가 발령된 지역의 대피 상황, 역과 학교 상황 등을 온종일 전했다. 동북 지방을 운행하는 많은 신칸센이 경보 발령 즉시 운행을 멈췄다. 등교 시각을 늦추거나 휴교하는 학교도 많았다. 어제 일본 SNS에서는 '(2011년) 3·11 대지진 때만큼 놀랐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호들갑 떤다고 느낄 수도 있다. 실제 국내 인터넷 댓글은 이런 내용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일본에 그런 측면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반도 4월 위기설'의 진원지도 일본이었고 그때 일본 정부는 한국 거주 일본인들을 소개(疏開)하는 훈련까지 했다.

▶그러나 위기와 재앙은 늘 예고 없이 오는 것이다. 핵과 미 사일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 쪽의 대응 태세가 오히려 걱정이다. 북한의 위협이 수십 년 되풀이되는 데서 오는 불감증, 같은 민족끼리 설마 핵을 쏘기야 하겠느냐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도 비상경보 제도나 시스템은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걸 운영하는 공무원이나 실천해야 할 국민이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9/2017082903168.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