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석 정치부 기자
이민석 정치부 기자

청와대는 20일 저녁 영빈관에서 그간의 국정 운영 성과를 국민에게 알리겠다는 취지로 '대국민 보고대회'를 열었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 회견을 가진 지 3일 만이다.

KBS·MBC·SBS 등 지상파 3사를 비롯해 JTBC, YTN, 연합뉴스TV는 이 행사를 한 시간 동안 생중계했다. 그것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TV를 봐 시청률이 가장 높다는 일요일 '프라임타임', 저녁 8~9시였다.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이 다양해졌다지만 이날 저녁 TV 앞에 둘러앉은 평범한 시민들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연으로 등장한 프로그램 외에 다른 선택권을 행사하기 힘들었다. 지상파를 비롯한 방송사들이 왜 이런 무대의 돗자리를 깔아줬는지 고개를 갸웃대는 사람들이 많았다.

행사는 대선 당시 민주당 선대위 홍보 인터넷 사이트인 '광화문 1번가'에 올라온 정책 제안들을 검토하고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 임종석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정책실장뿐 아니라 모든 수석비서관급 참모들이 참석했다. 북핵 위기에서 일선에서 뛰어야 할 강경화 외교장관, 청와대 안보실 1·2차장도 인디 밴드의 '꽃길'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였다.

행사 사회자는 "어디서 질문이 나오고 어디서 답변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방송 시나리오에는 어떤 질문자가 무슨 질문을 하고 누가 어떤 답변을 할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철저히 각본에 따라 등장인물들이 배치된 것이다. 지난 17일 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때만 해도 청와대 참모들은 '각본 없는 회견'을 강조했지만 이날은 철저히 '각본대로' 였다.

청와대는 이날 행사에 대해 "국민과의 직접 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대통령 기자회견 3일 만에 다시 방송 채널을 점유해 홍보 행사를 해야 할 필요성과 절박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예상 가능한 질문에 이미 공개된 정부 입장 이상의 내용은 보기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더욱이 문 대통령과 참모들, 그리고 장관들은 이날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살충제 계란', 국가 운명이 걸린 북한 핵·미사일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고대회'라기보다 하고 싶은 말 하고, 듣고 싶은 말 들은 '홍보쇼' 같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1/20170821001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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