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간헐적으로 나오던 북핵 타협론이 결국 주한 미군을 철수하자는 주장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예사롭지 않다.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 프로그램을 동결토록 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한반도에서 주한 미군을 철수하는 외교적 협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관심은 전적으로 중국이라는 말도 했다. 배넌은 백악관 내 입지가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주한 미군 철수 카드는 백악관 내에서 그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말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렉스 틸러슨 현 국무장관에게 "북한 정권의 붕괴 이후 상황에 대해 미국이 중국과 사전에 합의할 수 있다"며 주한 미군 철수를 카드로 제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보도했다. 배넌의 발언이 이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에도 '북핵 문제 해결에 평화협정 체결이 대안이 될 수 있고 주한 미군이 이슈가 될 것'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주한 미군 철수는 1976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추진한 이후 미국 내에서도 40년 동안 금기시되어왔다. 국내 좌파 진영에서도 통합진보당 등 일부 극단 세력만이 주장해왔을 뿐이다. 이것이 미국에서 먼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북의 핵미사일이 미 본토에 도달할 수 있게 된 상황을 바라보는 미국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적대시 정책을 중단하라'고 하는 것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그만두라는 것이고, 평화협정을 맺자고 하는 것은 주한 미군을 철수하라는 말이다. 주한 미군 철수로 북의 ICBM 개발을 막을 수 있다면 미국 내에서 북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주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미국 내에서는 현재 다양한 대북 협상론이 나오고 있다. '군사 옵션(선택)'도 검토하고 있다고 하지만 최근 나오는 것들은 모두 북이 핵실험과 ICBM 발사 시험을 중단하기만 해도 한·미 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할 수 있다는 내용들이다. 그제는 미 국무부 대변인이 동결만 해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미·북이 뉴욕 등에서 비밀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북핵 미사일 동결로 한·미 훈련 중단 등 북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북핵 공인화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핵 동결이 대북 대화의 입구(入口)이고 핵 폐기가 출구(出口)라고 했지만 핵의 효용성을 확인하고 한반도 주도권을 쥔 김정은이 핵을 버릴 이유가 없다. 결국 우리는 출구 없는 터널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 상상도 할 수 없던 주한 미군 철수론이 어느새 문을 열고 들어와 테이블 밑까지 왔다. 한국의 반대로 군사 조치도 할 수 없게 된 미국이 북핵 ICBM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 면 주한 미군 철수론은 테이블 위로 올라오게 될 것이다. 북한이 동결이라는 이름으로 핵과 미사일을 보유한 상황에서 주한 미군이 빠져나가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그런데 한·미 관계는 지금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다. 한국 정부의 관심사에서 안보는 최우선도 아닌 것 같다. 미·중, 미·북 거래가 한국을 제치고 벌어질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18/20170818031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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