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

9일 오후 1시20분 부산시 동구 초량동 성분도병원 응급실. 살아계신 걸로만 알았던 110살 어머니 구인현(구인현)씨가 이미 사망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듣고 혼절, 병원으로 실려온 장이윤(장이윤·71·부산시 중구 영주동)씨는 “오마니 품에 안겨 50년 불효를 빌려고 했는데…, 오마니!”라며 울부짖었다. 지난달 27일 노모의 생존소식을 통보받았을 때도 “그럴 리가 없어. 뭔가 착오가 났을 거야”라며 쉽사리 믿지 않으려던 장씨였기에 ‘북측의 착오로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는 소식은 더욱 충격이었다.

이날 오전 11시쯤 적십자사 부산지사 조호규(39) 기획관리팀장이 집을 찾아왔다. 부인 박순이(박순이·62)씨와 함께 북쪽의 조카들에게 줄 선물을 장만하러 나서던 참이었다. 조 팀장이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드리게 됐습니다. 마음 단단히…”라며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아…”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장씨는 쓰러졌다.

지난날 27일 이후 곡기를 멀리하고 거의 술로만 지새온 장씨였다.

“눈물이 나고 목이 메어 밥알을 넘길 수가 있어야지. ”

매일 밤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났고 새벽이면 초량동의 한 사찰에서 “뵐 때까지만이라도 어머니가 건강히 지내시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애타는 속을 달래려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15일이 다가오면서 어머니께 드릴 연분홍 저고리와 자주색 치마, 흰 고무신, 버선을 마련했다. 기억조차 희미한 어머니의 몸매를 기억해내기란 쉽지가 않았다. 칠보 쌍가락지와 금목걸이, 팔찌도 준비했다. 상봉 순간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황청심환까지 준비한 그였다.

장씨는 “차라리 처음부터 돌아가셨다고 말을 했으면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내 어머니를 앗아간 휴전선은 누가 만들었느냐”며 절규했다. 장씨는 간호사가 진정제를 주사하려고 긴 주사바늘을 꽂는 순간에도 감각이 없는 듯 초점없는 눈으로 천장만 응시했다. 말없이 아버지의 눈물을 닦던 둘째 아들 장준용(장준용·36)씨는 북측과 우리 정부에 대해 “우리 가족이 짐져 왔던 50년 이산의 아픔이 모자라 그런 거냐”며 울먹였다.

이날 응급실에서 장씨를 맞은 의사와 간호사들도 장씨 부자의 절규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비록 어머니는 돌아가셨어도 장씨는 오는 15일 북한에 가 조카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어머니 사망으로 장씨는 방북 순위에서 100위 밖으로 밀려 방북단에서 탈락하게 됐지만, 방북단 선정후보 101위 우원형(65·서울 서초구 잠원동)씨가 9일 장씨에게 방북을 양보했기 때문이다.

우씨는 이날 “적십자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사정설명을 들었다”며 “나야 탈락통보를 받고 심경을 정리한 상태지만, 살아있는 줄 알았던 노모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은 장씨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에 양보했다”고 말했다.

/부산=이길성기자 attic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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