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사회 전체가 규제 프리존
우리의 정보기술과 결합하면 4차 산업혁명 시너지 효과
'디지털 한반도' 큰 그림 짜야
 

우병현 디지털전략실장
우병현 디지털전략실장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지난 5월 '호모 데우스' 한국어판을 내면서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을 썼다. 그는 "한반도는 언제라도 핵전쟁이 터질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런 상황은 기술이 우리 종(種)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북한 핵이 지닌 잠재적 비극성을 묘사했다. 그러면서 하라리는 "북한이 모든 차량이 자율 주행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는 것"이라는 또 다른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딱 한 명(김정은)만 결심하면 북한은 하루아침에 4차 산업혁명의 중심 무대로 바뀔 수 있다는 상상이다.

최근 북한이 촉발한 동북아의 초긴장 상태를 고려하면 하라리의 발상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상에 가깝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관련 전문가들은 뜻밖에 하라리의 빅 히스토리 관점을 주목한다. 이들은 하라리의 담대한 상상이 통일이라는 변수와 만나면 남한의 차세대 산업 과제와 북한의 낙후성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 될 것이라고 본다.

우선 남한은 차세대 먹거리로서 4차 산업혁명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얽히고설킨 규제로 인하여 반 발짝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있다. 그 여파로 자율 주행차, 드론, 빅데이터 등 주요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선두 그룹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한국이 이만한 위치에 오른 원동력은 첨단 기술을 과감하게 상용화하는 대규모 테스트베드(시험대) 전략이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CDMA 기술을 채택한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경쟁력을 쌓아서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한 사례가 그런 점을 입증한다.

조선·자동차 등 기존 산업이 쇠락하고 새로운 산업을 키우지 못하는 상태가 3~5년 더 지속하면 한국 경제는 중위권으로 추락할 게 뻔하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경우 자율 주행차 시장을 한국에서 이른 시간 안에 만들어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지 못하면 3류 자동차 회사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북한은 자본주의 경제 관점에서 사회 전체가 규제 프리존이다. 하라리는 "그곳(북한)은 차량이 많지 않고 택시기사들이 시위를 벌일 수 없고 트럭 운전사들이 파업할 수 없으며, 모든 법적·철학적 난제들이 어느 날 오후 펜 놀림 한 번으로 해결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남한의 축적된 정보기술(IT)과 북한의 특수 조건을 결합하면 한반도 전체를 세계 최고의 4차 산업혁명 무대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SK텔레콤·삼성전자가 평양시와 손잡고 100% 자율 주행차 도시를 만드는 것을 상상해보자. 그러면 한국은 자율 주행차 대규모 상용 서비스에서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단숨에 선두 주자가 될 수 있다.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한반도의 지리적 이점도 자율 주행차 시장에서 귀중한 자산이다. 가령 부산~신의주 사이 자율 주행 트럭 전용 도로망을 구축하는 것을 구상해보자. 트럭은 승용차보다 자율 주행으로 더 빨리 옮겨 갈 것이라고 주목받는 분야다. 고속도로 상황은 시내 도로보다 자율 주행 적용 조건이 좋고, 트럭 물류망이 철도보다 비용과 효율성 면에서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향후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유라시아의 핵심 물류망 역할도 할 것이다.

물론 북한이 최고의 자율 주행 테스트베드로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구체적 방법론은 북핵 해법만큼이나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다. 또 진영 간 견해 차이가 극명할 것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최근 상황도 핵 문제 이외 모든 의제를 한가하게 만든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한반도가 다시 맞기 어려운 기회다. 상황이 어려워도 이런 기회를 눈 뜨고 놓쳐서는 안 된다. 당장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디지털 한반도'라는 그랜드 디자인을 짜야 한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테슬라 일론 머스크, 알리바바 마윈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야심가들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세계적 의제로 만들 수도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2/20170802032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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