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현 국제부 차장
안용현 국제부 차장

복기(復棋)해보자. 김정일이 당 간부들에게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통보한 것은 2009년 1월 8일(김정은 25번째 생일)이었다. 이후 북한은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에 '청년 대장' 등장을 예고하는 노래 '척척척'을 일반에 퍼뜨렸고,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에는 주민들을 모아 놓고 "청년 대장은 바로 김정운(당시 이름) 동지"라고 공개했다.

당시 마이크를 잡고 김정은 이름을 외쳤던 한 고위 탈북자는 "수천명이 일제히 '와~'하고 울리는 함성에 소름이 쫙 돋았다"고 했다.

2009년 5월 25일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김정은 후계 내정을 몰랐던 국내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듬해인 2010년 북한은 천안함 폭침(3월)에 이어 연평도 포격(11월) 도발을 했다. 그 사이(9월) 김정은은 대장 계급장을 달고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으로 집권한 김정은은 5년 8개월 동안 4명의 총참모장을 갈아치웠다. 북한군 총참모장은 전시(戰時) 작전권을 갖는 요직이다. 첫 번째인 리영호와 두 번째인 현영철은 불충(不忠) 등을 이유로 숙청됐고, 세 번째인 김격식은 3개월 만에 해임됐다. 네 번째인 리영길은 한 계급 강등돼 불명예 퇴진했다. 이에 대해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은 실전 같은 훈련을 원했는데, 총참모장들이 옛날처럼 보여주기식 훈련을 하다가 모두 철퇴를 맞은 것"이라고 전했다. 작년 2월 부임한 리명수는 전임들의 숙청 이유를 알고, 군 훈련을 실전형으로 전면 개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 성공 경축 연회에 부인 리설주와 함께 참석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1일 보도했다. 노동신문이 1면에 게재한 경축연회 사진. /연합뉴스
북한군 편제가 바뀐 것도 예사롭지 않다. 핵·미사일 개발을 주도하는 군수공업부와 제2자연과학원은 군(軍)이 아니라 당(黨) 기구이다. 김정일 시대까지 이 부서들은 모두 '인민복'을 입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부 군복을 입고 나온다. 핵·미사일 부대인 전략군이 신설되고, 민방위 격인 노농적위대가 노농적위군으로 개편된 것도 김정은 시대 들어서다.

2009년 1월 후계자 지명 이후 김정은이 보낸 신호는 일관되고 명확하다. 핵·미사일 강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핵·미사일을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메시지는 한 번도 내비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말 미국 CBS 방송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계속 핵무기로 블러핑(뻥)을 하고 있는데"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줄곧 '대화' 노래를 부르는 것은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을 대화용 '뻥'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말만 잘하면 핵도 포기할 듯한 '쇼'를 했다. 반면 김정은은 그런 쇼도 하지 않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다른 것만큼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는 많이 다르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을 장악한 김정일 시대 '대화 일꾼'들의 눈에는 김정은이 말만 잘하면 핵도 포기할 인물로 보이는 것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31/20170731027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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