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대표 무죄에… "정권 바뀌자 法해석 바뀌었나" 논란]

"사회주의 혁명이 운영 목적" 서점 대표의 법정 최후 진술에도
재판부는 "국가 존립에 해악 끼칠 명백한 위험성 있다고 볼 수 없어"

검찰은 "인정할 수 없다" 항소
일각선 "판사들, 시대 편승" 우려
 

똑같은 이적 표현물을 소장하고 배포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에게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남부지법은 '닻은 올랐다' '혁명의 여명' 등의 이적 표현물을 인터넷에 게시한 혐의로 기소된 '노동자의 책' 대표 이모(50)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적 표현물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 존립·안전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판단 이유였다. 반면 서울고등법원은 2011년 '닻은 올랐다' 등 이적 표현물을 배포한 혐의로 기소된 대학생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실형을 선고했다. 피고 측이 상고를 포기해 이 형은 확정됐다. 같은 이적 표현물을 소장·배포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엇갈린 판결이 나왔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노동자의 책' 대표 이모씨가 소장한 이적 표현물과 주요 내용

민노총 산하 철도노조 소속인 이모씨는 전자책 64권 등 '북한 체제를 찬양·고무하는 이적 표현물' 129건을 소장하고 배포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지난 1월 구속됐다. 이씨는 이 책과 문서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노동자의 책'이라는 사이트에 게시하고 일정액을 내면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게 했다. 여기엔 북한 원전(原典)인 '불멸의 역사' 시리즈 등 이적 표현물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거기엔 '금성(김일성을 지칭) 장군님께서 우리 조국을 해방하고 우리들의 원쑤를 갚아주실 겁니다' 같은 표현이 담겨 있다. 이 사이트에 2008년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에서 제작한 '우리의 입장·해설' '대중행동강령'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등의 문건도 게재했다. 모두 법원에서 이적 표현물로 인정된 것이다.

이씨는 지난달 22일 법정 최후 진술에서 "'노동자의 책' 사이트 운영 목적은 사회주의 혁명이다. 대한민국에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혁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판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심규홍)는 지난 20일 이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례 등을 고려할 때 129건 중 86건에 이적성이 있고, PDF 파일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 회원과 불특정 다수에게 무료 열람·다운로드할 수 있게 한 건 국가보안법상 '반포(頒布)'에 해당한다"면서도 "피고인이 이러한 표현물을 반포·판매·소지한 것이 반국가 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동조하거나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또 "설령 그런 목적이 인정된다 해도 피고인의 행위가 국가 존립·안전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씨에 대한 무죄 판결이 이전 법원 판단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은 2011년 5월 한 대학생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 대학생과 이씨가 공통적으로 소유한 책은 '닻은 올랐다' '혁명의 여명' 등 6권이다. 당시 재판부는 "(이 책들은) 북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활동을 찬양·미화하고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이라며 "피고인은 사상 학습을 위해 이를 소지했다"고 판시했다. 같은 해 서울고등법원이 유죄로 인정했고, 피고인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검찰은 "사회주의 혁명을 공공연히 주장한 이씨에게 무죄를 내린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25일 항소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권이 바뀌면서 법원이 국가보안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전과 다른 해석을 하는 건 발전으로 볼 수 있지만, 판사들이 시대 조류에 편승해 판결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7/20170727000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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