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 출신이라는 사실, 잊히고 싶은데"… '임지현 재입북' 논란이 부담스러운 탈북민들

- 편견도 무시도 과한 관심도 싫다
"중3 아들 학교 폭력 당했을때 다 덮자더라, 알려지는게 싫다고…
탈북민 대입특례도 원치않아" "정착금 갚으라는 폭언까지 들어"
전문가들 "존중받을 권리 있다… 탈북자 역량 펼칠 수 있게 해줘야"
 

탈북민 출신 방송인 임지현씨의 재입북(再入北) 문제로 탈북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싸늘해지고 있다. 단순 재입북을 넘어 간첩설까지 제기되면서 국내 탈북민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찰은 행방이 불분명한 탈북민 900명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

북한의 폭정과 기근으로 대량 탈북이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민은 3만명이다. 탈북민 수가 늘어나고, 관련된 사건·사고가 알려지면서 그들에 대한 우리의 배려와 이해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럴수록 고향을 감추고 대한민국 국민 속에 녹아들어가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탈북민이 늘고 있다. 잊힐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탈북민 꼬리표'를 붙이고 당국의 관리를 수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중학교 3학년 탈북민이 겪은 일이다. 두 달 전 그는 동급생에게 맞아 코뼈가 부러졌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지난달 열렸다. "아이들 간의 다툼"이라며 가해자를 벌하지 않았다. 엄마는 소송을 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이 "차라리 맞고 살겠다"며 말렸다. "사건이 커지면 탈북민이라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알려져 평생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탈북민 대안학교에 가라는 엄마의 말도 듣지 않았다.

이 모자가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건 2009년이다. 열 살이던 아들은 지금까지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부단한 노력으로 북한 억양을 지우고 완벽한 서울 말씨를 사용한다. 그는 '탈북민 대학 특례입학 전형'도 거부할 작정이다. "군대에 들어가 완전한 대한민국 청년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탈북민에게 병역 의무는 선택 사항이다.

국내 들어온 탈북자 수 그래프
/그래픽=김성규 기자

중학생 아들을 둔 한 탈북민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어느 날 아들이 친구에게 맞아 옷에 코피가 묻은 채 집에 왔다. 엄마는 "당장 학교로 가서 따지겠다"고 했다. 아들은 "엄마는 흥분하면 북한 사투리가 나온다"며 막아섰다. 그는 "손빨래로 아들 옷의 피 얼룩을 지우며 울었다"고 했다.

국내 탈북민 수는 지난 6월 기준 3만805명. 국내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는 탈북민은 1만명에 달한다. 5년이 지난 탈북민을 합치면 2만4000명이다. 정착 초기 탈북민들은 정부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탈북민 딱지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탈북민 박모(31)씨는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공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오는 8월 졸업을 앞두고 대기업 5곳에 지원했지만 줄줄이 떨어졌다. 박사 실업자가 넘치는 시대다. 북한 출신이 아니었다면 현실에 수긍했을 것이다. 하지만 면접관들은 질문할 때마다 '기분 나쁘실 수도 있겠지만'이라며 운을 뗐다. 그러곤 북한의 가족에 대해 물었다. 탈북민에 대한 사내외 부정적 시선은 어떻게 극복할지 답해 보라고 했다. 그는 "내가 탈북민이 아니라도 떨어졌을까 하는 자괴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박씨는 입사 지원 때 탈북민 신분을 숨길 수 없었다. 지원서에 출신 고등학교, 대학교와 군필 여부를 기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한 명문대를 졸업한 그는 탈북 이듬해인 2010년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왔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탈북민은 한국에 온 지 7년 됐다. 얼마 전 사장으로부터 "조선족들이 너 같은 탈북민보다 일을 잘한다" "내 세금으로 낸 정착금 받았으면 일이라도 뼈 빠지게 해서 갚아라"는 폭언을 들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아무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도 외국인 노동자와 비교될 수밖에 없구나.' 그는 "나는 탈옥수가 아니라고 외치고 싶다." 고 말했다.

우리 사회도 탈북민의 인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탈북민들은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데 우리 사회는 이들을 관리·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때로는 차별한다"며 "이들이 '탈북민 꼬리표'를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더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과 대치 국면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탈북민에 대한 최소한의 관리는 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5/20170725002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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