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각으로 13일 오전 4시 18분쯤, 북한 함경북도 나진 남동쪽 209㎞ 동해상에서 규모 5.8 지진 발생이 관측됐다고 미국 지질조사국이 13일 밝혔다. 같은 날 일본 기상청도 이 지진 발생을 탐지해 발표했다.
13일 새벽 지진이 발생한 지점. 붉은 원 안 청록색 점이 예상 발생 지점이다./조선DB

인민공화국 인근에서 지진이 났다 하면 대개 핵실험부터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양국 모두 이번 지진이 핵실험 여파일 가능성은 부정했다. 북한 핵 실험장 전역을 스캔해 본 것도 아닐 텐데, 무슨 근거로 이렇게 단언한 걸까.

#지진 시작점에 답이 있다
근거는 지진 최초 발생 지점, 즉 진원(震源)의 위치였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지하 539㎞ 지점에서 시작됐다.
자연지형 중 가장 깊은 지점인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연이 수심 1만920m이며, 인류가 직접 파내려간 땅 중 가장 깊은 구멍인 러시아 사할린 Z-44 Chayvo well 유정(油井)이 약 1만2376m정도 된다. 사람 손이 닿는 곳은 잘 쳐줘야 지하 10~12㎞ 정도니, 지하 539㎞에서 터진 지진은 자연지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핵실험이 원인인 지진은 대개 지하 1㎞ 내외가 진원지며, 아주 깊어 봐야 5㎞를 벗어나지 않는다”며 “지하 539㎞면 지각을 한창 뚫고 들어간 맨틀 지점이니 100% 자연지진”이라고 했다.

#만일 얕은 진원이었다면?
물론 자연지진인데도 진원이 지하 0~5㎞ 내외인 경우도 있다. 만일 이번 지진 진원이 이 정도 깊이였다면, 핵실험 가능성이 거론되며 반도가 혼돈에 빠져들었을까. 그렇진 않다고 한다. 자연지진과 인공지진을 판별할 방법은 진원 깊이 탐색 외에도 여럿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지진파(地震波) 탐지 기법이 있다. 지진이 나면 땅은 요동치는 용수철처럼 마구 흔들리며 파동을 낸다. 이 파동이 지진파다. 땅이 오그라들었다 펴질 땐 P파가 나오며, 위아래로 들썩일 땐 S파가 나온다.
참고로 P파가 S파보다 빠르기 때문에, 대개 지진관측소에선 P파부터 감지된다. 이 때문에 먼저 오는 지진파라 해서 ‘Primary Wave’ 중 머리글자 P인 P파다. S는 그다음 오니 ‘Secondary Wave’라 S파다. 지구과학 시험대비 암기비법 뭐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그래서 P파 S파다.
용수철 움직임으로 보는 P파와 S파. 위쪽 가로 방향으로 움직이는 용수철이 P파, 아래쪽 상하 방향으로 움직이는 용수철이 S파 형태다./인터넷 캡쳐
아무튼 이 두 파장을 감지하면 자연지진인지 인공지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홍 교수는 “핵실험은 지표면에서 벌어지는 단순폭발이라, 파형이 비교적 일정하고 발생하는 지진파 대부분이 P파다”며 “하지만 자연지진은 땅과 땅이 비틀리며 갖가지 불규칙한 지진 파형이 튀어나오며, P파뿐 아니라 강력한 S파가 검출된다”고 했다. 그는 “S파는 진폭이 크고 강력한 지진파로, 지구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충격인 핵실험 정도로 S파가 다량 형성되는 일은 드물다”고 했다.

#왜 판의 경계가 아닌가
지진에 관한 상식 중 하나는, 지진 대부분이 ‘판의 경계’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지진 발생 장소는 학교에서 배우는 판의 경계 지점과 많이 떨어져 있다. 이를 근거로 인공지진일 가능성을 제기해 볼 수는 없는 걸까.
한국 주변 판의 경계 배치도. 붉은 원은 이번 지진 발생 예상 지점./인터넷 캡쳐
물론 그렇지 않다. 사실 저 부분은 판의 경계가 맞다. 다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판의 경계와 그 지하에서 발생하는 판과 판의 섭입 모식도. 판의 경계와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도 지진이 발생 가능함을 볼 수 있다./인터넷 캡쳐
판의 경계에서 해양판이 대륙판과 만나면, 보다 무거운 해양판이 대륙판 아래로 파고든다. 이를 섭입(攝入)이라 한다. 판이 판 밑으로 우겨 들어가니, 비벼지는 면에선 마찰로 에너지가 발생하며 지진이 발생한다. 이렇게 판 사이 마찰로 지진이 잘 발생하는 구역을 ‘베니오프대’라고 부른다.

그림에서도 보이듯, 베니오프대는 겉으로 드러난 판의 경계와 아주 떨어진 곳에서도 존재 가능하다. 그러니 저 ‘호상 열도’를 일본이라 했을 때, 판의 경계가 드러나지 않는 한국과 일본 사이 해역에서도 충분히 자연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홍 교수는 “이번 지진은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이 섭입해 마찰한 지점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진원 깊이가 매우 깊은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즉, 이번 지진은 어느 모로 봐도 자연지진인 근거가 충분한 셈이다. 그러니 혹시 아침에 북한 지진 소식을 듣고 비밀 핵실험을 우려 중인 분이 있다면, 이젠 그 걱정을 고이 접어두도록 하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3/20170713021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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