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원전 관심 불러일으킨 영화… "후쿠시마 사고를 사실확인 없이 한국에 끼워맞춰"
 

정부의 일방적인 '탈(脫)원전' 방침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원전 사고를 소재로 지난해 12월 개봉됐던 영화 '판도라'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영화는 규모 6.1 지진 발생 후 원전이 폭발하는 사고가 나는데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줄거리다. 영화 상영 당시에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탈원전 정책에 대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논란의 한복판에 놓인 것이다.

정부의 원전 제로 정책 재고(再考)를 요구하는 서한을 들고 지난 5일 방한한 미국 환경 운동 단체 '환경 진보'의 마이클 셸런버거 대표도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판도라'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원자력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된 영화"라고 지적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해 원전에 대한 반감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장면 1 : 6.1 지진에 냉각재 밸브 균열

영화에서는 수명 40년이 된 한별원전이 6.1 규모 지진에 냉각재 밸브에 균열이 생기며 재앙이 시작된다. 한별원전은 1988년 가동을 시작한 경북 울진의 한울 1호기를 연상시킨다. 전문가들은 먼저 전제가 틀렸다고 말한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국내 원전은 바로 아래에서 규모 6.5~7.0 지진이 나도 견디게 설계됐다"며 "7.0의 내진 설계가 적용된 원전은 지난해 9월 경주에서 발생한 국내 관측 사상 최대 규모 5.8 지진의 60배 이상 충격까지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지진은 규모가 1 높아질 때마다 에너지가 32배 늘어난다.



日상황에만 맞춘 영화 판도라 - 영화 ‘판도라’의 포스터(왼쪽 사진). 수소 폭발로 원전 격납건물이 파손된 가운데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헬리콥터들이 바닷물을 퍼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당시 바닥이 난 냉각수를 대신해 바닷물로 원자로를 냉각하려 했으나 수소 폭발로 후쿠시마 원전 1·3·4호기 건물이 크게 파손됐다(오른쪽 사진).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원전은 원자로를 둘러싼 격납건물이 후쿠시마 원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 폭발로 무너질 수 없다고 말한다.
▲ 日상황에만 맞춘 영화 판도라 - 영화 ‘판도라’의 포스터(왼쪽 사진). 수소 폭발로 원전 격납건물이 파손된 가운데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헬리콥터들이 바닷물을 퍼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당시 바닥이 난 냉각수를 대신해 바닷물로 원자로를 냉각하려 했으나 수소 폭발로 후쿠시마 원전 1·3·4호기 건물이 크게 파손됐다(오른쪽 사진).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원전은 원자로를 둘러싼 격납건물이 후쿠시마 원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 폭발로 무너질 수 없다고 말한다. /NEW·도쿄전력
황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 때문에 발생했고, 지금까지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 발생 사례는 없다"며 "후쿠시마 사고 당시 해안 방벽 설치 등으로 쓰나미 피해가 없었던 인근 오나가와 원전은 피해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9.0 규모의 지진도 발생했지만 지진 자체는 원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원전 내부의 밸브는 3만개, 배관은 170㎞라 40년이 지나면 부식을 파악할 수 없다"며 지진에 의해 손상될 가능성을 말하는 대목이 있다. 이에 대해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모든 원전 설비는 고유의 식별 번호와 도면이 있어 개별적으로 관리가 가능하다"며 "이 설비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 기준에 따라 주기적인 성능 시험을 진행한다"고 반박했다.

장면 2 : 원자로와 격납 건물 폭발

영화에서는 원자로와 격납 건물이 폭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연상시키는데, 국내 원전에는 적용되지 않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국내 원전의 원자로 격납 건물은 두께 1.2m의 철근 콘크리트 외벽을 포함한 5중 방호벽 체계를 갖추고 있다. 철골 구조에 10㎝ 두께의 강판 패널로 만들어진 일본 격납 건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에 강하다. 한수원 관계자는 "체르노빌 원전은 아예 지붕이 없어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바로 방사능 물질이 유출됐지만 국내 원전은 격납 건물이 있어 비행기 충돌에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기사 관련 그래픽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에는 안전하게 멈췄지만 연이은 쓰나미에 외부 전원이 차단되고 비상발전기가 침수됐다. 이로 인해 냉각수 공급이 멈춰버리는 바람에 핵연료가 공기 중으로 노출되고 외부 피복이 산소와 반응하면서 수소가 발생했다. 여기에 불꽃이 붙으면서 건물이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원전은 이동형 발전기로 비상시 냉각수를 공급할 수 있고 설사 수소가 발생하더라도 산소와 반응시켜 물로 만드는 장치가 설치돼 있다.

장면 3 : 폐연료봉 저장조 바닥 폭발

영화에서는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 바닥을 폭발시켜 그 안의 냉각수로 원자로를 식히려는 시도를 한다. 이 역시 일본 원전에 맞는 상황이지 국내 원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일본 원전의 폐연료봉 저장 수조 아래에는 여유 공간이 있지만, 국내 원전 저장조는 암반 위에 콘크리트를 깔고 건설하기 때문에 저장조 하부에 공간이 없다. 게다가 자칫 저장조 바닥을 폭발시키다가 오히려 폐연료봉을 폭발시키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장면 4 : 냉각용 해수 투입 반대

영화 속에서는 원자로 격납 건물이 파손되는 상황에서 원전 회사 사장이 냉각수로 바닷물을 쓰는 것에 반대한다. 이는 후쿠시마 사고 상황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일본 정부와 원전 회사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현장 소장이 해수 투입을 결정했으나 이미 연료봉이 노출된 뒤였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을 책임지던 일본 동일본전력은 해수(海水) 투입 시 원전을 다시 쓰지 못한다며 처음에 반대했었다.



한국 원전과 일본 원전의 차이 그래픽
하지만 영화에서 설정은 이미 격납 건물이 폭발한 이후의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수소 폭발로 격납 건물이 크게 파손된 상태라면 어차피 원자로를 되살릴 수 없는 상황이므로 누구도 해수 투입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와 원전 회사의 무능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억지 설정"이라고 지적했다.

영화에서 증기발생기 쪽의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냉각수가 유출되면서 일대 혼란이 빚어진다. 하지만 국내 원전은 냉각수가 새어 나와도 일본처럼 방사성 물질이 대량 유출되지는 않는다. 일본은 원자로가 물속에 잠긴 형태로 원자로의 열이 바로 냉각수에 전달되기 때문에 물에 방사성 물질이 들어가지만, 국내 원전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의 냉각수가 분리돼 있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진짜 위협은 북한 미사일

일부에서는 발생 확률이 극히 낮은 자연재해보다는 북한의 미사일이 원전 안전에 더 위협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공대 교수는 "미사일 같은 강한 폭발이 일어나면 국내 원전의 초강도 콘크리트도 파손될 수 있다"며 "극단적인 자연재해보다 북한의 군사 위협을 더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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