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에 대사관 포위당한 美
嫌韓 기류 일지 말란 법 없고 북은 "핵 문제 美와 대화" 고수
시진핑, "북은 血盟" 강조하고… 푸틴, 대북 성명 거부로 동조해
우리가 기댈 언덕 분명히 해야
 

류근일 언론인
류근일 언론인

한·미 동맹에 힘입어 한국은 반세기 동안 안보와 번영의 안전판을 향유할 수 있었다. 미국도 이 동맹으로 극동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이 동맹은 새로운 '존재 이유'를 찾아 부심(腐心)하고 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자주 지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unilateralism)가 기존의 한·미 동맹을 되새김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렇게 자문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미 동맹의 대안은 없을까?"

문재인 대통령 팀은 노무현 전 대통령 팀보다는 세련되고 신중해진 것 같다. 그들은 "반미(反美)면 어떠냐?"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거친 언동의 부정적 반사 효과에서 많이 배웠던 것 같다. 문재인 청와대는 워싱턴에 가서 '교수 자격'이라며 한껏 떠든 문정인 특보의 과잉을 만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조신함에도 미국에 대한 한국 운동권의 기본 인식이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한·미 동맹은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미국 일각에서도 한·미 동맹을 다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 자체가 "왜 비싼 돈 들여 남의 나라 위해 피 흘리느냐?"는 냉담한 셈법이다. 마이클 오슬린이란 논객은 애틀랜틱 잡지에 실린 글에서 이렇게 시비했다. '북한은 미국의 존재 자체를 위협했던 왕년의 소련급(級)은 아니다. 이런 상대를 놓고 미국 도시들을 핵 공격의 과녁인 양 설정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한국 새 정부는 사드 완전 배치도 미루었다. 이런 동맹국을 위해 우리가 미국 장병을 위험에 방치해야 하는가?'
 
민노총·참여연대 등 90여개 단체로 구성된 '사드한국배치저지 전국행동' 소속 3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6월24일 오후 서울 미국 대사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미 대사관이 시위대에 완전히 포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연합뉴스

한국 운동권의 '민족·민중' 대미(對美) 인식과 미국 백인 사회의 자기 중심주의는 사상적으로는 상극일 수 있지만, 그 둘은 역설적인 접점(接點)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한국 운동권의 자주와 미국 백인들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극단적으로 시너지를 일으키면 한·미 동맹은 양쪽에서 다 '노후(老朽) 설비'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중국은 코리아 패싱(한국 제치기)을 하면서 한반도를 내키는 대로 재단할 수 있다. 결과는 한국의 핀란드화(化)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존속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당연히 뒤따를 것이다. 설마…. 그러나 우리가 하기에 따라 설마가 사람 잡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런 불확실성을 배경으로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 연구원은 6월 30일자 기고문에서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둘 다 한·미 동맹의 대안을 꿈꿀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을 보면 북한과 관련해선 한·미 동맹 외엔 달리 대안이 없다는 걸 인정한 것 같다.' 미·중·일·남북한이 얽혀 있는 동북아 정치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미국의 지렛대 역할을 전적으로 외면할 수만은 없고, 미국도 북한·중국에 대처하는 데 한국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의 글 제목은 그래서 '한·미 동맹은 문재인·트럼프 시대에도 잔존할 것이다'였다.

그러나 세상사는 스나이더식 합리적 선택대로만 되는 건 아니다. 합리의 얇은 껍질을 살짝만 벗겨도 그 밑엔 뜨거운 용암이 부글거리고 있다. 오늘의 한국 정치는 군중 직접 행동의 분출 용암이 휘몰아가고 있다. 대의제-제도권-엘리트 리더십이 추락한 가운데 '진보 정권이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고 탓하는 더 급진적인 군중이 광장을 점거하고 미국 대사관을 포위했다. '촛불 들어 미국을 쓸어버릴 것'이란 표현도 있었다. 이낙연 총리는 그 촛불의 도구가 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역으로 '저런 한국을 뭣 때문에 지켜주느냐?'는 미국의 혐한(嫌韓) 시위대가 한국 대사관을 포위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미 동맹은 지속 가능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쾨르버재단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을 제의했다. 김정은은 "남조선은 빠져라. 그건 우리와 미국의 일이다" 할 것이다. 이때 미국 여론이 김정은의 직거래 요구를 받자는 쪽으로 기울면 한국은 자칫 '오리 알'이 된다. 반대로 미국이 더 강한 제재나 군사적 선택으로 가도 '문재인 햇볕'은 구름에 가린다. 이래서 문재인 정부로선 신(新)햇볕정책의 운전석에 앉는 것 이전에 "북한의 나쁜 행동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한 동맹국의 결의에 동참해주는 게 더 앞설 수밖에 없다. 시진핑이 북한을 혈맹이라 부르고, 푸틴이 안보리 대북 성명을 거부한 마당에 한국이 비빌 언덕은 전통적 동맹관계 말고 또 뭐가 있는가? 한·미·일 정상의 공동성명은 늦은 감마저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0/20170710026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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