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박정희식 成長' 가치… 가난한 나라 일으켜 세웠으나 현 세대의 문제 풀기 어려워
새 출범한 두 보수당 지도부… 文 정권의 실수만 기다리다간 더 깊은 나락에 떨어질 수도
며칠 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끝나면서 이미 경선을 마친 바른정당과 함께 두 보수 정당은 당 지도부의 구성을 마무리했다. 대선 참패의 충격을 뒤로하고 보수 정치가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보수 정치의 재건은 생각만큼 그렇게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정치는 망했다. 그냥 망한 게 아니라 폭삭 망했다. 대선에서 한 번 졌다고 '폭망했다'고 하는 건 호들갑 떠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보수 정치가 처한 현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과거에도 보수 세력은 권력을 잃은 적이 있다.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잇달아 패배하여 10년간 권력을 진보 세력에 내주었다. 하지만 2002년에는 이회창 후보가 혼자서 45% 이상의 득표를 했고, 1997년의 경우도 이회창·이인제 두 보수 후보의 표를 합하면 50%를 훌쩍 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금년 대선에서 두 보수 후보가 얻은 득표의 합은 겨우 30% 정도이다. 이 비율은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혼자 얻은 36.6%보다도 낮다. 이런 수준으로 보수 정파가 유권자의 외면을 받은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보수 정파는 여전히 상황의 심각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 때처럼 시간이 가면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저런 실수를 할 테니 기다리면 권력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홍준표 대표가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를 두고 "얼마 못 간다"고 한 말이 바로 그런 인식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안이한 생각으로는 몰락한 보수 정치의 운명을 되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선 문재인 정부를 노무현 정부의 '시즌 2'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를 바로 곁에서 지켜본 것이다. 이는 사실 그동안의 어느 대통령도 갖지 못했던 귀중한 정치적 경험이다. 또한 그 주변의 참모들도 준비되지 못한 집권으로 들떴던 치기(稚氣) 어린 시절의 386이 아니다. 더욱이 북한에도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3대 세습이 이뤄졌고 핵무장을 추진하고 있다. 햇볕정책 때처럼 민족주의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관계 개선을 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사드 배치 여부 등 외교적 논란이 일자 보수 진영에서는 거보란 듯이 비판했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은 무난하게 마무리됐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대한 추모 등 세심하게 일정이 마련됐고, 트럼프와의 회담 역시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보수 정파에서 기대했을 수도 있는 미국과의 갈등이나 잡음은 생겨나지 않았다. 사실 미국 역시 작년의 촛불 집회를 보면서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렸던 2002년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보수 정치의 몰락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오늘날 보수 정치는 세대적으로 고립됐고, 지역적으로 편중됐다. 더욱이 외연의 확장 가능성도 잘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이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보수 정파가 스스로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해내려는 각고의 노력이 없다면 보수의 위기는 길어질 것이다. 보수 정치가 '망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존재 기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위기감을 갖지 못한다면 어쩌면 이게 바닥이 아닐 수도 있다. 보수 정치는 되살아날 수 있을까. 글쎄, 아직은 그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5/20170705035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