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3시 30분, 북한이 중대발표를 통해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 성공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날 디시인사이드 중앙대 갤러리(이하 중대갤)엔 게시글이 수백개 가까이 올라왔다. 대부분이 중앙대가 아니라, 북한 중대발표와 연관된 내용이었다. 북한 발표와 중앙대가 무슨 관계일까.
지난 4일 디시인사이드 중앙대 갤러리 상황./인터넷 캡쳐

#’털기’ 문화 개론
이를 이해하려면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 하나를 알고 넘어가야 한다. 바로 ‘털기’ 문화다.

라이벌 대학이 스포츠 대결을 벌이거나 함께 축제를 열면, 학생들이 상대 학교 쪽으로 달려가 노래를 부르거나 함성을 지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연고전 때 신촌 거리가 ‘Korea’ 점퍼로 가득 차거나, 고연전 도중 안암 한복판에서 ‘서시’가 울려 퍼지는 광경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구현한 게 ‘털기’라고 보면 된다. 한 커뮤니티 회원들이 상대 커뮤니티로 몰려가, 해당 커뮤니티와 무관한 글을 대량으로 올리는 것이다.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주목적은 위압과 세력과시였지만, 좀 과격한 때엔 상태 서버를 트래픽 과부하로 마비시키는 걸 목표 삼기도 했다. 지난 2010년 삼일절날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가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2ch’를 공격해 서버 다운까지 이르게 한 게 대표적 사례다.
지난 2010년 삼일절 당시 한국 네티즌 공격으로 마비된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 '2ch'./인터넷 캡쳐
이 ‘털기’ 문화가 가장 활성화됐던 커뮤니티가 바로 앞서 언급한 ‘디시’다. 대부분 커뮤니티와 달리, 회원 가입을 하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어 트래픽 유발이 비교적 쉬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규모 ‘털기’ 사건은 대개 디시 산하 커뮤니티(갤러리) 사이에서 벌어졌다. 동원할 가능한 트래픽량을 ‘화력’이라 부르고, 상대 갤러리 제압을 ‘점령’이라 부르는 등, 실제 전쟁에 비견될 정도였다.
지난 2007년 디시인사이드 곤충 갤러리를 해외축구 갤러리(약칭 해충갤)로 오인해 털기를 시도한 인터넷 커뮤니티 '웃긴대학' 유저들./인터넷 캡쳐
#왜 중대갤인가
아무튼 이 ‘털기’ 문화가 한창 활발하던 2010년 12월, 온 지구인을 설레게 하는 소식이 있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지구 밖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내용으로 중대발표를 한다는 예고였다. 당시 다수 네티즌이 NASA가 기자회견장에 목줄 엮인 외계인을 끌고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잠을 설쳤다 한다.

하지만 막상 본 발표 내용은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생명체 필수 원소인 인(P)이 없는 환경에서도, 비소(As)를 기반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실제 그렇게 사는 외계 생명체를 발견한 것도 아니고, 지구 내에 이런 생명체가 있으니 외계에도 이렇게 사는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시사했을 뿐이었다. 참고로 훗날 추가 연구로 이마저도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실망은 이내 분노로 변했다. 그렇다 한들 일개 한반도 네티즌들이 지구 최고 과학기관인 NASA를 어찌해 볼 도리도 없었다. 이때 이들 눈에 들어온 곳이 디시 ‘중앙대 갤러리’, 약칭 ‘중대갤’이었다. 이 모든 게 중대발표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중대갤을 털자는 기괴한 논리가 전개됐다. 그리고 막대한 화력이 중대갤을 향해 쏟아졌다. 평화롭던 중대갤은 1941년 12월 7일의 진주만처럼 대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이들은 미군이 아닌지라, 자다가 느닷없이 얻어맞고도 변변찮은 보복조차 할 수 없었다.
지난 2010년 12월 NASA 중대발표 이후 털리는 중앙대 갤러리./인터넷 캡쳐
이에 재미를 들린 네티즌들은 중대발표가 터질 때마다 중대갤을 터는 걸 전통으로 삼았다. ‘털기’ 문화가 거의 희미해진 지금까지도 유독 중대갤 습격 전통만큼은 쭉 이어져, 결국 지난 4일 북한 중대발표에 애꿎은 중대갤이 돌을 맞은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엔 크고 작은 ‘중대발표’가 참으로 많다. 지난 2012년 8월 이병헌-이민정 결혼 선언도 중대발표였고, 지난해 3월 테니스 여제 마리야 샤라포바의 금지약물 검출 소식도 중대발표였다. 특히 북한은 웬만한 공식 발표가 거의 중대발표다. 그러다 보니 중대갤도 속절없이 털리는 게 일상이다. 하도 털리다 보니 중앙대도 거의 해탈해서, 지난 2013년엔 아예 축제 명칭을 ‘CAUtion-중대발표’로 지었다 한다.
지난 2013년 중앙대 축제 'CAUtion-중대발표' 공식 로고./인터넷 캡쳐
#영원히 고통받는 세븐갤

여담으로 이 분야에서 중대갤보다 한층 더 이름난 곳이 있다. 마찬가지로 디시 산하 갤러리인 ‘세븐 갤러리’(이하 세븐갤)이다. 이곳은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경기 중 무어라도 ‘7’이 관련된 숫자가 나오면 털렸던 것을 시작으로 해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중대갤은 ‘중대발표’가 있어야만 계기가 생기지만, ‘7’은 어디서건 끌어내기 쉬운 숫자라 중대갤보다 습격당하는 빈도가 훨씬 심하다. 가령 지난 2015년 12월 21~22일 대구에서 지진이 있었을 땐, 강도 3.5 지진이 이틀간 이어졌다 해서 3.5x2=7이라며 세븐갤을 털었다. 지난해 12월 9일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7ㅏ결’돼서 세븐갤을 털었다. 참고로 세븐갤 모토는 ‘일단 털고 나서 이유를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라고 한다.
한 네티즌이 만든 '세븐갤이 털린 이유'. 매 초단위로 실시간으로 디시인사이드 세븐 갤러리가 털려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인터넷 캡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5/20170705021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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