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시종일관 미국 얘기만… '한국 끼지 말라'는 뜻]

北 "美위협 청산 안되면 核·미사일 협상도 없다"
주한미군 철수·평화협정 체결 위한 의도 드러내
 

김정은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5일 김정은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시험 발사 성공 직후 현장에서 "미국 놈들이 '독립절'에 우리에게서 받은 선물 보따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스스로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을 의식해 발사 일정을 잡았으며, 이번 ICBM 발사가 미국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정은은 이어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케트를 협상탁(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핵과 미사일 개발이 '조·미(朝美)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 미군 철수'라는 북한의 전통적인 대남 전략 아래 이뤄지는 것이란 점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때부터 "조선에 평화가 오려면 핵을 가진 미군이 철수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이 "오늘 우리의 전략적 선택을 눈여겨보았을 미국 놈들이 매우 불쾌해하였을 것"이라며 "앞으로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선물 보따리들을 자주 보내주자고 호탕하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화성-14형 미사일을 바라보면서 "미남자처럼 듬직하니 잘생겼다" "미제와의 기나긴 대결이 드디어 마지막 최후계선에 들었다"고도 말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으며 미국 본토 타격 능력까지 갖췄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김정은은 또 "원자탄·수소탄과 함께 대륙간탄도로케트까지 보유함으로써 우리 조국의 종합적 국력과 전략적 지위는 새로운 높이에 올라섰다"며 "우리가 선택한 핵 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의 근원적 청산'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정은이 말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청산은 작게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 크게는 주한 미군 철수까지 다 포함된 것"이라고 했다. 또 북한은 '적대 관계 청산'의 조건으로 과거부터 평화협정을 요구해왔다. 지난달에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대조선 정책을 수립하고 싶다면 조·미 사이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적대 관계를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의 요구는 '핵 폐기를 전제로 한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미국의 입장과 정반대다. '대화 조건'의 선후를 북한이 뒤집어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중국 측이 주장해온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을 의미하는 이른바 '쌍중단(雙中斷)'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 트럼프 정부와 본격적인 '기 싸움'을 시작한 것으로도 봤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ICBM을 레버리지(지렛대)로 삼아 미국에 '핵 동결'을 전제로 한 협상을 시도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북한이 대화에 조바심을 내는 것 같다"며 "미국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자 급한 마음을 자꾸 노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중앙통신의 이날 보도에는 우리 정부나 남측과 관련된 언급은 한 줄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전문가들은 "핵·미사일과 관련한 대화 상대는 오직 미국뿐이며 한국은 여기에 끼지 말라는 얘기"라고 했다. 양무진 교수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를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이 지지한다고 했는데,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선언한 것"이라며 "한반도 문제는 한국이 아니라 북한이 주도자라는 메시지를 국제적으로 던진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6/20170706000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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