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둘째날]
영국 보수당 살려냈던 前총리… 그가 말하는 '보수 재건의 길'

- 보수주의 핵심은 뭔가
"소중한 가치 지키려 변화하는 것… 시대 흐름 읽어야 집권 가능하다"

- 대한민국이여, 자긍심 가져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 이 가치들이 성공한 나라 만들어"

- 진정한 지도자의 리더십은
"매일 여론에 휘둘리기보다 사회 바꾸는 굵직한 정책 펼쳐야"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4일 "보수주의의 핵심 본질은 '소중한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변화해야만 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선 시대적 상황에 맞는 정당이 돼야, 집권해서 국민에게 봉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캐머런 전 총리는 이날 제8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대담 상대인 전광우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좌교수로부터 "보수 재건의 길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받고, "시대에 맞는 정당이 되기 위해 계속 변화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어느 정도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답했다.

"대한민국의 가치에 자긍심 가져야"

캐머런 전 총리는 지난 2005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보수당 대표가 됐다. 3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영국 보수당이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에 총선 3연패를 당하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였다.

캐머런 전 총리는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의 기치를 내걸고 당을 재건해서 2010년 총선에 승리하고 13년 만의 재집권에 성공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자유무역과 자유시장경제, 언론 자유와 사법부 독립 등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 세계 곳곳에서 등장한 ‘스트롱 맨’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면서 초(超)불확실성의 시대를 ‘통념이 무너진 시대’로 정의했다. 캐머런 전 총리가 제8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자유무역과 자유시장경제, 언론 자유와 사법부 독립 등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 세계 곳곳에서 등장한 ‘스트롱 맨’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면서 초(超)불확실성의 시대를 ‘통념이 무너진 시대’로 정의했다. 캐머런 전 총리가 제8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대담에서 캐머런 전 총리는 12년 전 보수당 대표가 됐을 때 상황에 대해 "당시 보수당은 사회 현실을 잘 모르고 시대에 뒤처졌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며 "특정 주제와 관련된 보수주의에만 집착했고 기후변화, 환경, 사회적 변화 같은 시의적절한 이슈를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캐머런 전 총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성공한 정당이었던 영국 보수당을 재건하기 위해 영국이 어떤 나라로 바뀌고 있는지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현대적 정당으로 변모시켜야 했다"며 "모든 분야의 이슈를 제기하며 2005~2010년 당을 개혁했고 그 덕분에 영국 국민과 다시 연결되면서 2010년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캐머런 전 총리는 '보수'의 정체성이 '가치의 수호'에 있다면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공약하고 2013년 영국 의회에서 통과시켰던 경험을 거론했다. 캐머런 전 총리는 "동성결혼 합법화는 '진보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수적인 일"이라면서 "나는 결혼이 훌륭한 제도란 사실을 믿는다. 그렇다면 성적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 그 제도를 누리지 못하도록 해야 할 이유가 뭐 있나"라고 말했다.

또 캐머런 전 총리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처럼 현재 대한민국을 이룬 '가치'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며 "그런 가치들을 따르기로 결정한 정치적 선택이 지금의 한국을 북한과 확연히 다른, 성공한 나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로봇공학·인공지능(AI)·유전공학 같은 분야의 가장 큰 진전 역시 미국·한국·영국처럼 자유가 보장된 나라들에서 나왔다"며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 창의성이 나오고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극우화·포퓰리즘 결국 국민과 멀어져"

보수당을 재건한 캐머런 전 총리는 작년 7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결이란 '불의의 일격'을 맞아 사임했다. 2015년 총선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할 때만 해도 부결을 확신했지만,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영국의 EU 탈퇴 결정은 고립주의와 반(反)이민주의, 포퓰리즘의 확산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해석됐다. 이를 두고 캐머런 전 총리는 이날 오찬 기조연설에서 "보수당 대표로 11년, 총리로 6년을 일하며 '국민투표 소집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농담했다.

그러나 캐머런 전 총리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후회하지 않는다"며 "EU(유럽연합)로의 정치적 통합에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었고 국민투표를 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포퓰리즘으로는 이민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포퓰리스트 정당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뿐"이라면서 "진정한 지도자는 매일 언론과 여론에 휘둘리기보다 사회를 정말 변화시킬 수 있는 굵직굵직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캐머런 전 총리는 "현재의 초(超)불확실성과 포퓰리즘의 부상에는 경제·문화적 원인이 있다"며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뒤처진 사람들이 있다. 급속도로 증가하는 이민과 인구 이동에 적응하지 못하는 국가와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캐머런 전 총리는 "전 세계 지도자들이 포퓰리즘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원인을 파악해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캐머런 전 총리는 또 "세계화의 좋은 점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며 "대신 최저임금을 올리고, 저소득층의 세율을 낮춰주며, 직업을 얻을 수 있게 교육해서 경제적으로 뒤처진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미국 공화당은 대선에 계속 패배한 뒤 중도화되기보다 더 우경화됐다. 그래서 한 번의 선거는 이겼지만 장기적 해답은 아니라고 본다"며 "극우가 돼서 잠시 기분이 좋고 한 번쯤 선거에 이길 수는 있겠지만 결국 국민들로부터 더 멀어질 뿐"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5/20170705002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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