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칼럼] 기업인 업어주기로 일자리 만들 수 있을까

한국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로 업어주기가 있다. 한국인의 DNA에는 포대기에 싸서 아이를 업어키웠던 어머니의 사랑이 각인돼 있다. 한국인이 정(情)이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는 말도 있다. 오랜 시간 아이를 업어주면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되고 유대감도 깊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업어주기는 사랑과 존경,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연인을 업어주고, 남편이 아내를 업어주고, 입대 장병이 부모님을 업어주고, 운동선수가 감독을 업어주고, 연예인이 팬을 업어준다. 한국처럼 어부바 행사가 다양하고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업어주기가 정치적 이벤트로 활용되기도 한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작년 총선 때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원 유세를 가는 곳마다 후보를 업어줘 눈길을 끌었다. 북한의 김정은도 지난 3월 신형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참관한 뒤 관계자를 업어주는 쇼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일자리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경영계가 정말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역할을 해 주신다면 제가 언제든지 업어드리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지난 4월 대선 후보 합동토론회 때도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면 업어줄 것”이라고 했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담은 메시지다.

새 정부는 일자리 정책을 국정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일자리로 시작해 일자리로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기업인 업어주기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이벤트가 될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이 업어준다고 해서 덥석 업힐 기업인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 때처럼 장관이 대신 나서는 게 서로 마음이 편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3년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총대를 멨다. 새만금 산업단지를 방문해 열병합발전소 건설에 96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한 OCI-SE의 사장을 등에 업었다.

새만금 열병합발전소는 작년 4월 가동에 들어간 이후 6개월간 6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투자규모에 비해 크게 미흡하다는 평가다. 수요 예측에 실패해 무리하게 투자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그래서 OCI는 작년 말 열병합발전소 매각을 추진했다가 가격이 맞지 않아 중단하기도 했다. 경제 부총리의 업어주기가 무색해졌다.

애초 기업인을 업어준다는 것 자체가 촌스러운 발상이었다. 투자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전적으로 기업이 알아서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가 업어주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 고용을 늘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업어주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억지로 기업 투자와 고용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기업 투자와 고용 환경을 개선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최소한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 과잉 규제로 인해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기업인에 대한 격려와 독려, 기업인 업어주기는 사족에 가깝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그런 측면에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은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22일 내놓은 통신비 절감대책을 비롯해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전·월세 상한제도 추진 등 시장·가격 규제 정책이 줄을 이을 조짐이다. 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공약과는 달리 규제 강화 일변도다. ‘신(新)관치 시대’라는 말까지 나온다.

‘비정규직 제로(0)’ 정책과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정책을 둘러싼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대부분 중견·중소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성과연봉제 폐지를 비롯해 공공부문의 철밥통 문화는 더 견고해질 전망이다.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고용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새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을 자처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촛불 청구서’를 들이대며 기세등등한 모습이다. 반면 재계는 지난 정부의 허물과 관련된 적폐 세력으로 몰리며 입도 벙긋하지 못할 정도로 주눅이 들어있다. 투자심리도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정부 일자리 정책의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

정부는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인이 진짜 애국자”라고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그런 애국자가 저절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업가 정신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환경과 사회적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면 기업인 업어주기 쇼를 하지 않아도 기업 스스로 투자하고 고용을 늘릴 것이다. 일자리 정책의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6/2017062601890.html#csidx024c703133e9dfa89d6807c9ada8441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