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정치부 기자
김진명 정치부 기자

"청와대하고는 모른다고. 학자로 (미국에)갔다고."

21일 오전 4시 24분쯤 문정인 청와대 특보가 인천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오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다가섰다. 문 특보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대뜸 언성을 높였다. 신경질적으로 손을 흔들며 "아니, 학술회의에 가서 얘기한 것을 갖고 왜 이 모양들이에요"라고도 했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지난 며칠간 문 특보가 미국에서 쏟아낸 한·미 동맹, 북한 핵·미사일 관련 발언으로 몸살을 앓았다. 문 특보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사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 동맹이 깨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고 했다. 미국 전문가들과의 세미나에선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한다면 미국과 논의를 통해 한·미 합동 군사훈련과 한반도에 있는 미국의 전략 무기 배치를 축소할 수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이라고 했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연기 결정 등으로 크고 작은 오해가 쌓여가고 있는 한·미 관계를 뒤흔드는 내용이었다.

북한과의 협상 필요성과 '한미연합훈련 축소' 가능성 등을 강조했던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21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 국무부는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한국 정부의 공식 정책을 반영한 게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 말 속에는 '문 대통령의 제안이라면 문제'란 의미가 녹아 있었다. 외교부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에 아무 실익이 없는 말씀을 왜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의 '외교 멘토'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가 반박할 수도 없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결국 청와대가 나서서 "문 특보에게 한·미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엄중하게 말했다"고 밝혔다.

이날 새벽부터 기자들이 공항 입국장 부근에 진을 치고 문 특보가 귀국하기를 기다린 것은 그에게서 직접 자신의 발언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문 특보의 태도는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에게 "문 대통령의 제안"이라고 할 때와 너무나 달랐다. 그는 "봉급도 안 받는 특보는 무슨…. 학자로서 얘기한 건데"라며 "나는 (대통령)특보이지만 연세대 교수가 내 직업"이라고 했다. "대통령 특보가 아닌 교수로 불러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문 대통령도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문 특보는 상근 특보가 아니고 나와의 관계는 비공식적(informal)이며 학자로서 그런 발언을 계속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 특보가 아니었다면 많은 미국 전문가들이 그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가 방미를 앞두고 청와대를 찾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자신의 발언 내용을 놓고 사전에 상의할 이유도 없다. 그랬던 문 특보가 이제 와서 '특보 대신 교수로 불러달라'고 하고 있다. 그가 정말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는 교수'로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대통령 특보직을 그만두면 된다. 그런데 그는 이날 끝내 '특보직 사임'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1/20170621036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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