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평창올림픽 8개월 앞두고 女아이스하키 단일팀 추진
피아니스트·의사 포기하고 올림픽 위해 스틱 잡은 선수들
北 선수에 11~12명 자리 내주게 되면, 대표팀 절반 평창 못가
 

연세대 음대를 다닌 한수진(30)은 졸업 후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했다. 그가 택한 건 빙판 위의 삶이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아이스하키 스틱을 잡은 것이다. 주변에선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했지만 지금의 그는 국가대표팀 핵심 공격수로 성장했다. 캐나다 출신 박은정(28)은 콜롬비아대 의학대학원에 휴학계를 던졌다. 교포2세인 그는 '꼭 한번 올림픽에서 뛰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강원도 강릉 출신 박종아(21)는 중2 때 서울로 '나홀로 유학'을 와서 수년간 자취 생활을 하며 아이스하키를 익혔다. 이들의 월급은 한 달 훈련수당 120만원이 전부다. 이들은 모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올림픽 무대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8개월여 앞둔 현재, 선수들 대부분은 허탈감에 빠져 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추진되고 있다는 뉴스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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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성사되면 지금 한국 멤버 중에서도 빙판에 설 수 없게 되는 선수가 생긴다. 지난 4월 강릉 여자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선수 이규선(오른쪽·현재 은퇴)이 경기 후 북한의 김금복과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일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추진 의지를 밝히면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및 북한 장웅 IOC 위원과 논의해보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올림픽을 '평화의 제전'으로 만든다는 명분과 대전제가 깔려있지만, 선수들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갑작스럽게 한국 선수 절반이 평창에 가지 못할 가능성이 생긴 탓이다. 선수들 대부분은 "믿고 싶지 않은 소식" "이럴 수가 있나"하는 반응이다. 역대 남북 단일팀은 남북 선수를 비슷한 숫자로 나눠 구성했다. 이대로라면 23명의 엔트리에서 절반에 가까운 11~12명이 북한 선수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대표팀 선수 A는 "올림픽을 목표로 피땀 흘린 우리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했다.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는 8개 국만 출전한다. 상·하위팀 간 전력 차가 크기 때문에 한국(세계 랭킹 22위)은 개최국 자격으로 평창에 나갈 수 있었다. 북한(25위)은 출전권이 없다.

B선수는 본지 통화에서 "우리 자리를 북한 선수들에게 주겠다는 것 아니냐"고 분개했다. 남북 단일팀은 협회와 논의된 것도 없다고 한다. 선수들도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북한은 올림픽 전 종목을 통틀어 출전권을 얻은 종목이 아직 하나도 없다. 올해 말 쇼트트랙, 피겨 스케이팅 등 일부 종목의 국제 대회 성적을 봐야 하지만 "현재 전력으로는 사실상 불가능"이라는 것이 관련 종목 관계자들의 평가다. 이 때문에 단체 종목인 아이스하키 단일팀이라는 방식이 거론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력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아이스하키는 골문을 지키는 골리(골키퍼) 3명을 제외하고 20명의 선수가 수시로 교체하면서 한 번에 5명씩 빙판에 선다. 선수 전원의 역할과 교체 순서가 세분화돼 있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게다가 지금의 한국 전력은 북한보다 훨씬 강하다. 평창 유치 이후 대대적인 투자를 한 결과다. 한국은 지난 4월 세계 4부리그에서 3부리그(디비전1B)로 승격한 반면, 북한은 그대로 4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북한을 상대로 4전4패를 기록하다가 최근 2경기에선 모두 이겼다.

아이스하키계에선 "올림픽을 위해 우리가 나서서 한국인으로 귀화시킨 선수들의 앞날도 문제" 라는 말이 나온다. 현재 대표팀엔 임진경, 박은정, 랜디 그리핀 등 3명의 귀화 선수가 있다. "필요할 때 데려와 놓고 이제 와서 이들에게 '좀 빠져줘야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자 대표팀은 올림픽을 대비해 현재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고 있다. C선수는 "우리는 평창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평창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2/20170622001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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