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전년 대비 중국 수출 27% 증가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이 시작됐지만 화장품의 중국 수출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항간에서는 중국이 화학에 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지만 그야말로 속설일 뿐이다. 그 힘은 ‘한류’에 있었다.

사드 배치 관련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가 시작된 건 2016년 말부터다. 중국 정부 당국은 한국산 제품 통관을 이전보다 까다롭게 했다. 한국 단체 관광을 금지하고, 한국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을 막았다. 민간 차원의 불매 운동도 거세게 일어났다. 중국 민·관의 전방위적인 경제 보복에 대해 국내에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언론과 전문가들은 반도체, 석유화학 제품 등 중국이 완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중간재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이와 달리 중국 현지 업체들의 제품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한 소비재의 경우엔 심각한 매출 감소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중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한국 화장품의 경우 판매량이 급감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실상은 달랐다. 한국 화장품의 수출은 중국의 경제 보복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늘었다.

관세청은 4월 19일 국내 화장품 업계의 1분기 수출 총액은 34억 46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억 9600만 달러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중 대중(對中) 수출액은 지난해 1분기의 26억 6000만 달러보다 7억 1000만 달러가 증가한 33억 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화장품의 온라인 해외 직접 판매액도 5932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70% 늘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화장품 수출은 어떻게 증가하게 된 걸까.

간단히 말하면 그간 쌓은 한국 화장품 산업의 기초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화장품을 비롯한 한국 미용산업은 세계시장에서 ‘K-뷰티(K-Beauty)’로 불린다. K-뷰티의 현재 위상은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의 성장 덕분에 형성됐다. 해당 지역의 급격한 수요 증가에 맞춰 인종적으로 비슷한 소비자층을 목표로 제품을 개발, 생산활동을 해온 국내 화장품 업체들에 기회가 생겼다.

한국 화장품 업체들은 ‘빨리빨리’ 근성으로 최신 소비 욕구를 반영한 제품 혁신을 추진했다. 또 소득이 증가하면서 대두한 ‘삶의 질’의 관점에서 중국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려 했다. 식품·화장품 분야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안전사고, 대기오염과 미세먼지로 인한 피부 질환 증가 등에 따라 중국 소비자들은 화학성분을 불신한다는 점을 감안해 약초에서 추출한 천연 성분을 함유한 제품들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이에 따라 한국 화장품 기술 수준은 대폭 향상됐다. 중국 내 시장점유율도 빠르게 증가했다. 2014년 글로벌 코스메틱 연구개발사업단의 조사 결과 서구 주요 업체들의 80.1% 수준으로, 보건산업진흥원에서 2005년에 발표한 67.4%보다 12.7p% 높았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 화장품 업체들이 혁신 과정을 통해 제품의 안전성, 신뢰성 면에서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걸 의미한다. 해당 기간, 국내 화장품 업계가 선도해 세계로 퍼진 ‘BB크림’과 ‘마스크팩’, 세계 최초로 개발한 ‘쿠션’이 이 같은 과정에서 출시된 K-뷰티의 대표적인 혁신 사례들이다.

한국 화장품의 가격 경쟁력 역시 중국의 경제 보복을 무색하게 한 요인이다. 세계시장을 선도하던 서구 업체들이 고가 전략을 유지하면서 일종의 ‘사치품’으로 차별화를 해 왔지만 한국 업체들은 가격 대비 성능, 소위 ‘가성비’가 높은 제품들을 대량 생산·유통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가 급성장했다고 하지만, 아직 1인당 연간 가처분소득이 400만원(2016년 중국 국가통계국 기준)에 불과하다는 현지 사정을 염두엔 둔 전략이었다.

품질·가격 혁신이 있었다고 해도 드라마, 영화, 가요 등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소위 ‘한류’가 없었다면 한국 화장품의 매출 신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미국산이 아닌 프랑스산 화장품이 잘 팔리는 이유는 ‘문화의 힘’ 덕분이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이 잘 팔리는 이유도 이와 같다. 중국에서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인기가 올라감에 따라 국가 이미지가 제고됐고, 더불어 한국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했다.

화장품의 경우엔 ‘아름다운 한국 여성 연예인’들을 통해 제품의 우수성이 전파돼 단기간에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화장품은 현재 중국 시장에서 1위인 프랑스 화장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화장품의 대중 수출액은 총 11억 8500만 달러로, 12억 6500만 달러를 기록한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한국 화장품이 중국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갖고 있으므로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가 당분간 계속되더라도 전체적인 매출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 당국의 한국 단체 관광 금지에 따라 국내 면세점의 화장품 판매량은 감소했지만, 업체들의 온라인 판매와 소비자의 직접 구매 비중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오리온, 초코파이 판매량 회복 전망했지만

같은 소비재라도, 화장품과 달리 가공식품은 중국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오리온의 ‘초코파이’다. 1993년, 중국에 진출한 오리온은 현재 현지 시장에서 제2위의 제과업체가 됐다. 오리온 매출의 56%에 해당하는 1조 3000억원이 중국에서 발생한 매출이다. 초코파이, 고래밥 등 한 제품 매출이 1000억원을 넘는 ‘메가 브랜드’만 7개를 보유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초코파이는 중국 파이 시장의 35%, 초콜릿 코팅 제과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점유율 1위 제품이다.

오리온은 중국 시장에서 초코파이의 이름을 ‘좋은 친구’란 뜻의 ‘하오리우(好麗友) 파이’로 바꾸는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 초코파이는 중국에서 2000억원어치(2016년 기준)가 팔리는 인기 제품이 됐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조사하는 중국 브랜드 파워지수의 파이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올해 1분기 성적은 저조하다.

애초 오리온을 한국 회사로 인식한 중국 소비자는 전체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화교 3세여서인지 소비자들은 오리온을 중국 기업이나 대만·홍콩의 화교 업체로 알고 있었지만,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 내 제재가 가시화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오리온은 한국 기업”이란 이야기가 확산됐다. 이와 함께 초코파이 판매량은 감소하고, 재고는 쌓이기 시작했다. 현재 오리온은 초코파이 등 주요 제품 재고 관리를 위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지에 산재한 현지 생산 공장 5곳의 생산 라인을 축소해 제품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가공식품 맛을 좌우하는 조미료는 고도의 화학기술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데, 중국 업체들은 기술이 부족해 짝퉁 초코파이조차 만들지 못한다”며 “중국의 경제 보복이 계속되더라도 중국 소비자들은 초코파이를 계속 사 먹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공산권 국가는 전통적으로 물리학과 화학 등 기초과학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 왔다. 중국 역시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 1997년 이른바 ‘973 계획’을 수립해 추진했다. 이후 중국의 과학논문인용색인(SCI) 논문은 해마다 평균 19% 늘면서 미국 다음으로 SCI 인용 논문이 많은 나라가 됐다. 그럼에도 연구 성과를 상용화하는 과정의 기법이 부족해 실질적인 기술력은 경쟁국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가공식품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온갖 ‘짝퉁’을 만들어내는 중국에선 이미 다수의 초코파이 모방 제품이 유통되고 있다. 북한에서조차 ‘쵸콜레트 단설기’란 이름의 ‘북한판 초코파이’가 생산된다. 화학기술이 없어 초코파이 모방 제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단, 중국 현지 업체들이 주원료와 방부제, 감미료, 합성착색료, 인공착향료, 팽창제, 산화방지제 등 다양한 식품 첨가물의 최적화된 배합률을 구현하지 못해 오리온 초코파이 같은 맛을 내지 못하고 있긴 하다. 중국판 초코파이를 먹어본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초콜릿의 당도, 비스킷과 마시멜로의 질감이 오리온 초코파이보다 떨어진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오리온 측은 4월 중순 “초코파이는 워낙 현지에서 인기 있는 제품이므로 이번 여파가 오래갈 것 같진 않다”고 강조했지만, 4월 26일 사드가 전격 배치된 만큼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는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15/20170615009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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