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나는 '北과의 대화' 접근법]

核개발 나선 北과 20년 넘게 제네바 합의·6자회담 등 했지만 北은 매번 보상 챙긴 후 뒤통수
韓·美, 지금까지는 核중단 등 대화 위한 '3대 전제조건' 고수
文대통령은 일단 대화를 시작하는게 중요하다고 판단
 

"북한이 핵·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하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그동안 한·미가 공유해왔던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북한은 지난 20여년간 핵실험 등을 중단하는 대가로 중유 지원, 제재 해제 등 보상을 챙기고 회담에 임하는 척하다 합의를 깨는 기만전술을 되풀이해왔다. 한·미는 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비핵화를 담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가 있기 전에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정부 소식통은 "문 대통령은 일단 대화 조건을 낮춰서라도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 "대화 위한 대화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거론하면서 '핵·미사일 추가 도발 중단' 외의 어떤 대화 조건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어느 정도 기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으면 이를 '도발 중단'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따로 조건을 붙이지 않았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일시 중단'만 하더라도,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이는 이전까지 한·미 양국이 북한과의 대화 진전을 위해 내건 3가지 조건과는 차이가 있다. 한·미는 ①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완전히 중단하고 ②핵 폐기와 비핵화에 진정성 있는 태도를 행동으로 보이면 ③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위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한·미가 이런 조건을 내걸게 된 것은 '핵·미사일 도발→대화 공세→합의와 보상→합의 파기→핵·미사일 능력 진전'이 반복되는 북한식 협상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였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한·미가 경수로와 연간 50만t의 중유를 제공하는 대신, 북한은 핵 사찰과 핵 동결 그리고 궁극적 핵 폐기를 하기로 약속했지만, 2002년 북한이 플루토늄 핵폭탄보다 강력한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핵폭탄 개발을 시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합의는 깨졌다. 이후 2005년 9월 9·19공동성명, 2007년 2·13합의, 북·미 대화를 통한 2012년 2·29합의 등이 있었지만 북한은 매번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미국에서는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없으며, 협상을 통해 지원을 얻어내려고 할 뿐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됐고, '북한의 진정성 있는 변화'를 선제 조건으로 제시하게 됐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은 '대화 재개'라는 단기적·가시적 성과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정부·의회에 퍼져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 "대화와 비핵화 병행"

반면 문 대통령은 '일단 대화를 시작하고 단계적으로 비핵화 협상을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도발 중단→대화 재개→정상회담→북핵 폐기의 수순이다. 이 같은 구상은 10여년 전 6자회담의 접근 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북한의 핵 개발이 아직 고도화되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과 북한이 5차 핵실험까지 마친 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까지 진전시킨 현재는 상황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도발 중단의 대가로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도발 중단 후 단계적 비핵화 협상'은 김정은 정권에 숨통을 터주는 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17/20170617002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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