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6월 15일은 6.15 남북 공동선언문을 발표한지 17주년 되는 날이다. 통일에 대한 자주적 해결과 이산가족 문제의 조속한 해결 등을 담은 6.15 남북 공동선언문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6월 1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북한 평양에 방문한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당시 두 사람의 만남은 1945년 한반도 분단 이후 55년 만에 이뤄진 남북한 정상의 만남이었다.

언젠가 한반도 통일이 현실로 다가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상상 속의 통일은 낭만적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커다란 부작용과 사회적 혼란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특히 완전고용을 표방하는 북한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의 해체는 대량 실업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이 “통일 직후 사회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복지정책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07년 6월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열린 6·15 민족통일대축전장에 한반도기가 입장하고 있다. / 조선일보DB
▲ 2007년 6월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열린 6·15 민족통일대축전장에 한반도기가 입장하고 있다. / 조선일보DB
지난달 국민연금공단 산하 국민연금연구원은 ‘통일 대비 효율적인 연금통합 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남한과 북한은 분단 이래 연금제도 등 사회보장제도를 상이하게 발전시켜 왔다”며 “통일시 이를 빠르게 일원화해야 예상되는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과거 동독과 서독의 통일 사례를 언급하며 경제력 격차가 큰 남북한 역시 남한의 연금제도를 북한에 도입해 통일에 따른 충격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 현금성 급여 중심의 남한, 사회서비스 중심의 북한

북한은 연금제도를 포함한 현대적 사회보장제도를 남한보다 먼저 실시했다. 연구진은 “1946년에 제정된 사회주의 노동법과 사회보험법이 그 효시”라며 “특히 사회보험법은 ‘근로자연금’ 등 사회보장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가장 구체적인 법률이었다”고 설명했다. 남한의 경우 최초의 연금제도는 1952년 도입된 보훈연금이지만, 근로자를 위한 연금제도는 북한(1946년)보다 42년 늦은 1988년에 시행됐다.

이후 북한은 1956년 항일투사·제대군인·애국열사 등과 그 가족에게 주는 ‘공로자연금’을 도입했고, 1985년에는 농민사회보장법 제정과 함께 ‘농민연금’을 실시했다. 이중 근로자연금과 농민연금은 일반연금에 해당한다. 공로자연금은 공훈을 세웠거나 훈장·포창을 받은 이들에게 주는 특수연금이다.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로자연금은 남한 국민연금의 연장선상에서 지급하는 특별급여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보훈연금 또는 특수직역연금의 성격도 혼재돼 있다”며 “다른 연금에 비해 수급 요건이 관대하고 급여 수준도 월등히 높다”고 말했다.



남한과 북한의 연금체계 비교 / 국민연금연구원 제공
▲ 남한과 북한의 연금체계 비교 / 국민연금연구원 제공
하지만 북한의 연금체계는 다층구조인 남한과 달리 단층구조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유·무상 배급과 현금급여(연금)가 전부라는 의미다. 완전고용 체제라서 고용보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연구위원은 “사적인 소유를 금지하고 모든 생산물을 국가에 귀속한 다음 재분배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기업이나 개인 차원의 노후 준비는 있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은 사실상 무상배급제와 같은 현물 중심의 보편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사회보장제도를 1차 사회안전망으로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연금 등 현금성 사회보장급여는 보완적 제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남한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사회보험이 1차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 특히 현금성 사회보장급여가 주축을 이루는 가운데 사회서비스 급여는 현금성 급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또 남한은 국가가 국민의 노후를 기본적인 선에서 보장하고 그 이상은 기업 퇴직연금이나 개인 저축 등을 통해 보완하도록 하는 ‘공·사 혼합의 다층보장체계’를 지향한다.

공적연금 제도가 직역에 따라 분화돼 있다는 점도 북한과 다른 남한 연금체계만의 특징이다. 민간 근로자와 자영업자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보호를 받고, 공공부문 종사자는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우체국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4종에 가입하는 식이다.

이밖에 남한은 국민연금을 보완하는 성격의 재분배성 연금제도인 기초연금(장애인연금 포함)을 두고 있기도 하다. 기초연금은 북한의 의식주 무상배급과 유사한 기능을 갖는다. 이 연구위원은 “하지만 남한은 북한처럼 연금 수급자에게 무상의 서비스급여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동독 주민들이 서독 영토에 들어가고 있는 모습 / 조선일보DB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동독 주민들이 서독 영토에 들어가고 있는 모습 / 조선일보DB
◆ 서독 연금제도 동독에 입힌 독일

국가간 통일의 형태는 진행 방식에 따라 무력통일과 평화(합의)통일로 구분된다. 진행 속도에 따라서는 급진(흡수)통일과 점진통일, 절충통일로 분류되기도 한다. 무력에 의한 급진통일은 예멘과 베트남 사례가 대표적이다. 급진적인 평화통일의 대표 사례는 1990년 동독과 서독의 통일이다. 남한 정부는 오래 전부터 점진적인 합의통일을 제안해왔다.

연구진은 이번 보고서에서 독일의 통일 후 연금 통합 과정을 소개했다. 연구진은 “통일 직후에는 서독 제도의 기본 틀을 동독에 적용해 적정 수준의 연금을 신속히 제공하고, 이후 서독 제도를 전면 도입해 연금을 통합한 점이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독일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불과 11개월 만인 1990년 10월 3일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재통일을 이뤘다. 동독과 서독은 1990년 5월과 8월 두 차례의 국가조약 체결을 통해 통일국가의 틀을 미리 준비했다.

1차 국가조약은 화폐·경제·사회통합조약으로 불린다. 두 나라 정부는 당분간 분단 상태를 유지하면서 서독의 통화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사회보장체계를 동독에 입히기로 합의한다. 2차 조약 체결을 통해서는 동독에 적용하기 위한 연금통합법이 마련된다. 이후 독일은 연금단일화특별법을 제정해 1992년 1월부터 시행한다.

연금단일화특별법의 기본방향은 서독 제도를 기본으로 하되 두 나라간 경제력 차이가 크므로 당분간은 일부 제도와 재정을 분리해 운영한다는 것이다. 통일독일 정부는 서독 법에 따라 기존 동독 주민의 수급권을 전면 재산정하고, 급여 상향 조치를 취해 균형을 맞췄다. 또 공적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했던 동독 자영업자들에게는 5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가입 유지 또는 탈퇴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했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 및 연금통합 과정 / 국민연금연구원 제공
▲ 동독과 서독의 통일 및 연금통합 과정 / 국민연금연구원 제공
연구진은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는 서독 연금제도를 기본으로 한 동서독 연금제도의 일원화는 동독 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과 복지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1990~1994년 동독의 평균 연금수급액은 2.5배 증가했다.

이 연구위원은 “특히 동독 노인들은 독일 통일과 연금 통합의 최대 수혜자였다”며 “이동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노인들의 복지를 크게 높여 이주 동기를 상당 부분 억제시킨 점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 “북한 노인 빈곤율 최소화에 초점”

연구진은 남북한 통일이 동서독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면 연금 통합에 대한 해법 역시 독일의 사례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 연구위원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복지와 성장간, 복지와 남하 이주 압박간의 적절한 균형점을 미리 찾아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는 북한지역 노인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자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연구진은 남북한의 연금 통합은 북한 노인의 빈곤율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빈곤은 상대적 빈곤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북한 노인의 상대 빈곤율이 남한과 유사한 수준이 되도록 북한지역 연금 수준을 설정해야 한다”며 “제도 전환기에는 기득권을 보호해야 하므로 다소 관대한 수급 요건을 적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노력이 통일 직후 대량 남하 또는 대량 실업의 충격을 연금제도가 조금이나마 흡수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연구진의 주장이다. 이 연구위원은 “연금제도가 모든 충격을 흡수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기여하게끔 만들어야 사회 혼란을 줄일 수 있다”며 “예를 들어 북한 지역의 연금 지급 연령을 한시적으로 남한과 달리 적용하는 등의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황해북도 개풍군의 북한 주민들이 들판에서 작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공
▲ 황해북도 개풍군의 북한 주민들이 들판에서 작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공
연구진은 연금 통합의 세부 원칙도 제시했다. 우선 현행 남한 제도를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연구진은 “통일 후 남북 연금제도를 융합해 제3의 제도로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며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적합한 남한의 연금제도로 전면 대체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금제도의 적용과 일원화는 긴급구호기·안정기 등 두 단계로 구분해 진행해야 한다. 남한 제도를 즉시 적용할 수 있는 여건이 북한에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기초연금은 개인별 소득과 자산에 대한 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국민연금은 과거 노동 이력 자료의 복구와 전산화, 자본주의식 임금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연구진은 연금 재정과 회계를 두 지역이 분리 운영하되 북한 지역의 재정 적자는 국고로 조달해야 한다는 원칙도 제안했다. 연구진은 “만약 북한의 적자를 남한의 국민연금 가입자가 보험료 인상이나 기금 사용 등을 통해 부담할 경우 국민연금의 재정 불안이 가속화될 수 있다”며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가입자와 국민연금 가입자간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북한 제도에서 획득한 기득권(수급권·기대권)을 철저히 보호해줘야 사회 혼란이 예방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에 연금제도가 없었다는 전제 하에 제로베이스(zero base) 상태에서 연금을 통합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 북한 주민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북한에서 획득한 사회보장 수급권은 어떤 경우라도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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