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사제폭탄 테러용의자 체포… 범행 자백]

택배상자 열자 텀블러 폭발, 피해 교수 손·얼굴 1~2도 화상
화약 묻은 장갑 나오자 시인

- 인터넷에 널린 제조법
쇼핑몰서 재료 손쉽게 구매, IS 폭탄 제조법과 유사

- 대학측의 안일한 대처
추가 폭발물 수색 중에도 테러 건물서 기말고사 강행
 

13일 오전 서울 연세대 공학관에서 발견된 사제(私製) 폭탄.
13일 오전 서울 연세대 공학관에서 발견된 사제(私製) 폭탄. /연합뉴스
대학원생 제자가 스승을 대상으로 사제(私製) 폭탄 테러를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13일 자신이 소속된 연구실 김모(47) 교수를 대상으로 사제 폭탄을 터뜨린 혐의로 연세대 대학원생 김모(25)씨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자신의 범행 사실을 자백했으며, 범행 동기와 폭발물 제조법을 습득한 경로에 대해선 조사 중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학교 동료들은 "몇 달 전 김씨가 교수로부터 혼난 적이 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실 앞에 나사 채워넣은 사제폭탄… "죽일 의도로 만든 것"

13일 오전 8시 30분쯤 연세대 기계공학과 김 교수는 제1공학관 4층 자신의 연구실 앞에 놓여 있는 쇼핑백을 발견했다. 그 안에 세로 20㎝, 가로 10㎝ 크기 종이 박스가 들어 있었다. 박스를 여는 순간 안에 있던 텀블러(손잡이가 없는 휴대용 컵)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김 교수는 두 손과 얼굴·목·귀 부분에 1~2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폭발물은 가로 7㎝, 세로 16.5㎝ 크기 스테인리스 재질 뚜껑이 있는 텀블러에 화약과 나사를 채워 넣은 구조였다. 점화(點火) 장치로 추정되는 건전지 4개가 전선으로 연결돼 있었다. 폭발과 동시에 6㎜ 크기 나사가 사방으로 날아가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제대로 폭발해 나사가 사방으로 튀어나갔다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폭탄을 감식한 경찰 관계자는 "뇌관과 기폭장치 등 폭발물로서는 기본 요소를 다 갖췄다"며 "내부에 화약과 나사가 채워져 있었다는 점에서 테러 대상을 죽일 의도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약의 폭발력이 충분하지 않아 불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캠퍼스에 軍까지 출동 - 13일 오전 서울 연세대 공학관에서 사제(私製) 폭탄이 터져 교수 1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자 군 병력이 출동해 건물 외부를 경계하고 있다. 군 부대는 이번 사건이 북한이나 다른 외국 테러 집단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상황 파악에 나선 것이다.
캠퍼스에 軍까지 출동 - 13일 오전 서울 연세대 공학관에서 사제(私製) 폭탄이 터져 교수 1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자 군 병력이 출동해 건물 외부를 경계하고 있다. 군 부대는 이번 사건이 북한이나 다른 외국 테러 집단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상황 파악에 나선 것이다. /뉴시스
경찰은 김 교수 연구실에 소속된 대학원생 9명 등 주변 인물을 조사했다. 이 중 한 명인 기계공학과 대학원생 김모(25)씨가 이날 오전 7시 30분쯤 배낭을 메고 사고 현장 인근을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CC(폐쇄회로)TV에 찍힌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김씨가 집 근처에 버린 실험실용 장갑을 입수했고, 여기에서 화약을 검출했다. 김씨는 경찰에 "직접 사제 폭탄을 만들었다"고 시인했다. 경찰은 김씨의 범행 동기를 집중 추궁하는 한편 김씨의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압수해 폭발물 제조법을 습득한 경로를 조사하고 있다. 같은 연구실 소속 일부 대학원생은 "김씨가 몇 달 전 김 교수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학생도 인터넷 검색해서 폭탄 쉽게 만들 수 있어

이날 폭탄 사건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도 테러 안전국이 아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 사용된 것과 유사한 사제폭탄 제조법은 유튜브나 구글 등 인터넷에서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상세한 제작법을 찾을 수 있다. 재료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별다른 제재 없이 살 수 있다. 최정훈 한양대 화학과 교수는 "화약은 문구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딱총이나 폭죽을 해체해서 얻을 수 있고, 2년 전 프랑스 파리 테러에 쓰인 아세톤이나 과산화수소수 등도 생활용품점 등에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사제폭탄을 이용한 범죄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2015년 서울 양천구 한 중학교에서 이모(15)군이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라이터와 휘발유, 폭죽과 부탄가스 등을 이용한 사제폭탄을 만들어 터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작년 1월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총포·화약류의 제조 방법이나 설계도 등을 카페나 블로그, 유튜브 등 인터넷에 올린 사람에게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리는 처벌 규정을 시행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단 지적이 나온다. 외국에서 올라온 동영상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번 사제폭탄도 80여 명 사상자를 냈던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때 사용된 '압력밥솥 폭탄'이나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쓰는 '못폭탄'과 비슷하단 분석도 나왔다. 지난 5월 22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사건의 범인도 못과 볼트, 너트 등을 채워 만든 '못폭탄'을 사용했다.

테러 위험에 무감각한 의식도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날 김 교수의 연구실 과 같은 층에 있는 제1공학관의 한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이 오전 10시부터 기말 시험을 봤다. 제1공학관과 다리로 연결된 제2·3·4공학관에서도 일부 학과가 예정대로 시험을 치렀다. 제1공학관에 폭발물 탐지견이 투입돼 추가 폭발물 수색이 이뤄지고 있던 때였다. 연세대 재학생 커뮤니티에는 '시험 연기하고 모두 대피시켜야 하지 않나?' 등의 항의 글이 올라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14/20170614001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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