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외교의 길' 낸 한승주 前 외무부장관 인터뷰]

"美는 한국의 北 미사일 방어 의심, 中은 사드 배치 포기에 헛된 기대"
학자서 외교장관·주미대사 지내… 지금도 국제무대에선 '현역'
 

"아베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했는데 둘 다 성공적이었어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사전에 잘 파악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들이 왜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는가를 면밀히 분석·연구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만난 한승주(77) 전 외무부 장관은 여전히 한국 외교의 갈 길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곧 있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한 전 장관은 "정상회담은 현안을 놓고 협상을 하거나 말씨름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상대가) 예정에 없던 발언이나 제안을 내놓을 것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3월 (북미·유럽·아시아태평양 지도자들이 모이는) '삼각위원회'에 한국 측 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을 다녀왔고, 최근 막을 내린 한국·독일 통일자문회의의 한국 측 위원장을 지내는 등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우리 외교관들이 담당 업무에만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이슈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면서 폭넓게 사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국제정치학자인 한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 초대 외무부 장관(1993~1994년)과 노무현 정부 초대 미국 주재 대사(2003~2005년)로 현실 외교에 참여했다. 그는 학자·외교장관·주미 대사에 걸친 경험 등을 담아 최근 회고록 '외교의 길'을 펴냈다.

한 전 장관은 책 전체 분량(415쪽)의 18%에 해당하는 77쪽을 노무현 정부에서 주미 대사로 일했던 경험을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반미 대통령, 친미 대사'란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부분에는 현 상황에 대입해 볼 만한 대목이 많다. 그는 책에서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보좌진은 이념 면에서 좌파적 성향이 강했고, 외교부·국방부는 성향이 달랐으므로 불협화음이 밖에서도 많이 들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본심이야 어떻든 겉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중국에 편향되었다'라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고 썼다.

한 전 장관에게 '문재인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계속 배치한다는 것도 아니고 철회하는 것도 아닌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이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라고 묻자 "좋은 방침이 못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략적 모호성은) 미국에는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 방어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주고 중국에는 우리가 사드 배치를 포기할지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주게 된다"며 "우리가 사드 배치에 조금 서둘렀던 감이 있으므로 국내법과 과정을 충실히 따르겠다는 점을 들어 미국을 설득해 볼 수 있지만, 배치 결정을 번복할 경우 한국을 방어하려는 미국의 의지는 물론 한미동맹 자체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한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중국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중국이 이(사드) 문제로 계속 한국을 압박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중국에 한국이 배치를 취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주지 않으면서 중국과 실무적으로 협조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한 전 장관은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2015년의 위안부 합의는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일본이 정부 예산을 거출(醵出)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백 하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우리가 이 문제로 일본을 계속 압박하면 오히려 일본 국수파의 입지만 강하게 만들어 줄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한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이 대선 때는 '재협상' 공약을 했지만, 당선 후에는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고만 언급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이런 신중한 입장이 현명한 대응"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13/2017061300095.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