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논란 이후 워싱턴에 한국 友軍 사라졌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 어깨 넘어 미·중 密約 가능성 터줘
 

강천석 논설고문
강천석 논설고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분초(分秒)가 아까운 형편이다. 삐끗하면 닉슨·클린턴 두 대통령을 탄핵 심판대에 세웠던 사법방해죄에 얽힐지도 모른다. 이런 급박한 처지의 트럼프 대통령이 금싸라기 시간을 쪼개 국무·국방장관과 사드 한국 배치 문제를 논의했다. 예감(豫感)이 심상치 않다.

국무부 대변인 브리핑도 사금파리로 유리창 긋는 소리를 냈다.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연기 결정에 실망했는가'는 질문에 '성격 규정을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사드 배치는) 최고위급 차원 대화에서 이뤄진 동맹의 결정이었다'고 했다. '미국은 동맹국 한국 (안보)에 헌신하고 있으며 그 공약은 철통같다' '동맹' '최고위급 결정' '한국 안보에 헌신'이란 단어가 파편(破片)처럼 튄다. 새가슴이라 덜컥하는 게 아니다. 미국 대통령들은 내정(內政)이 어려워질 땐 돌파구를 외교 분야에서 찾곤 했다. 지금 미국 대통령이 누군가.

사드 파문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배치된 사드 발사대 2기 외 4기의 발사대가 비밀리에 추가 반입됐다는 보고에 충격을 받고 그 경위를 조사하도록 지시했다'는 청와대 발표로 시작됐다. 새 뉴스가 아니라 구문(舊聞)이다. 그런데 왜 대통령이 충격을 받았을까. 군사 용어에 익숙지 않은 새 정부 인사들이 '반입'과 '배치'라는 단어를 혼동한 건 아닐까. 이런 의문을 달고 굴러간 사드 논란은 환경영향평가를 대규모로 새로 실시하는 데에 이르렀다.

문 대통령은 마침 방한한 미국 민주당 상원 의원에게 '나의 조치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이며, 기존 결정을 바꾸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대통령의 설득은 불발(不發)로 끝났다. 그는 면담 자리에서 '한국이 사드를 원하지 않는다면 (사드 배치와 운용에 필요한) 9억2300만달러 예산을 다른 곳에 돌릴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 돌아가선 "사드는 명백히 한국 국민과 그들을 지키려고 한국에 나가 있는 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 체계'라면서 '한국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사드에 관한 한 워싱턴에서 한국의 우군(友軍)은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중국에 각기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는 설(說)이 있다. 미국엔 사드 배치를 연기하되 뒤집진 않는다는 뜻을, 중국엔 배치 연기를 통해 성의를 표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두 과녁을 동시에 겨눈 서툰 솜씨가 역풍(逆風)만 불렀다. 중국은 배치 연기를 푼돈으로 여기며 배치 철회라는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트럼프 정부 정책은 북한을 최대로 압박해 유리한 대화 무대를 설치하는 것이다. 현재는 압박 단계다. 미국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再開) 논의에 이은 사드 배치 연기를 대열 이탈로 받아들였다. 한국이 압박 대열(隊列)에서 이탈하면 대화 단계에서 외톨이로 따돌림을 받는다. 그 길은 고립(孤立)의 길·쇠락(衰落)의 길이다.

북한 미사일 개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는 단계에 근접할수록 한·미 정책 목표가 어긋날 가능성도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면 미·중 밀약(密約)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사드 문제가 긴급 사안이 아니라던 청와대가 하루 만에 태도를 바꿔 워싱턴 산불 긴급 진화(鎭火)에 나섰다. 불길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낀 모양이다.

동맹에도 급수(級數)가 있다. 냉전 시절 미국·유럽 관계가 최상위(最上位) 동맹이다. 미국 이익 제1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등장 이후 미국·유럽 동맹은 급수가 하향(下向) 조정되고 있다. 방위비 분담을 둘러싼 이견(異見)이 직접 계기다. 미·일 동맹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일본은 방위비 분담 증액(增額)에서 미국 내 일자리 만들기까지 트럼프 뜻을 척척 맞춰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한·미 동맹은 격하(格下)되고 있다. 격상(格上)된 미·일 동맹과 격하된 한·미 동맹의 격차가 불안하다.

내각도 꾸리지 못했지만 대통령 지지도는 펄펄 날고 있다. 대통령은 이미 많은 자리, 많은 정책을 갈아치웠고 더 많은 것을 바꾸고 싶어 한다. 옛 서독 총리 브란트는 문 대통령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바꾸고 싶어 했다. 그런 브란트가 총리 취임 이후 한동안 총리실의 의자·책상은 물론이고 액자 하나 바꾸지 않았다. 정책 변경에는 더 조심스러워했다. 작은 변화 하나가 국민에게 또 동맹 국가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했기 때문이다.

보름 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나라의 분수령(分水嶺)이 될지도 모를 회담이다. 정권의 취향(趣向)이 나라의 안전보다 앞설 수 없다. 흔들리는 한·미 관계가 나라를 흔들게 해선 안 된다. 대통령은 중심(中心)을 잡아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9/20170609031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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