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珍鉉
/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가 4월 초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다. 임 특보는 그동안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사실상 주도해 왔으며,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그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획기적 돌파구가 열리기를 바라는 기대도 높다. 그러나 임 특보의 방북이 현재의 어려운 한반도 상황의 개선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올바른 접근 전략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반도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임동원 특보는 우리 정부가 북한에 특사 파견을 제의한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한반도 안보 위기를 예방하고, 둘째는 올해 예정된 선거와 한·일 월드컵을 비롯한 4대 행사를 안전하게 치르며, 마지막으로 경제회복의 지속적 추진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모두가 충분히 수긍할 만한 것들이다. 임 특보는 이 중에서도 안보위기 방지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안보 현안의 논의가 이번 방북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임 특보가 말하는 안보위기란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에서 비롯하는 위기로 이해된다. 주지하듯이 미국은 9·11 사태 이후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반(反)테러 차원에서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며, 부시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을 이라크·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이로 인해 북한의 미사일 수출과 개발, 제네바 합의에 따른 핵 시설 사찰 문제는 발등의 불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안보위기의 예방 필요성을 강조한 임 특보의 상황인식은 올바른 현실진단이다.

문제는 그렇다면 한반도의 안보 현안을 과연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있다. 그동안 현 정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비롯한 안보문제를 제기하는 데 무척 소극적이었다.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의 가장 시급한 현안인 군사문제가 논의되지 않아 상당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북한이 다루기를 원치 않는 군사문제 대신, 북한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제공하고 여러 가지 상징적 이벤트를 통해 화해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그 이면에는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고 베풀다 보면 안보현안은 나중에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과 접근전략이 타당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의가 필요없을 것 같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 안보위기의 심각성을 진정으로 인식하고 이를 방지하려 한다면 그동안의 접근전략부터 바꿔야 한다. 상대가 싫어할 말은 피하고 원하는 것을 해주면 문제가 풀린다는 식의 안이한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정면으로 대처해야 한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한·미양국의 심각한 우려를 전하고 북한이 결단을 내리지 않을 경우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음을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 북한 고위급 인사의 월드컵 개막식 참석과 같은 상징적 행사나 인도적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간의 공동전략은 마련됐는가? 이번 임 특보의 방북은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며, 양국간 치밀한 조율을 거친 것인가? 이번 특사 방북과 후속조치들이 대량살상무기 위협의 해소라는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간 긴밀한 공조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와 함께 현 정부의 햇볕정책은 최소한 접근전략상의 수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또 한번 ‘화해협력’이나 ‘민족중심’의 들뜬 분위기나 조성하려 한다면 대외적으로는 우방국과 갈등을, 대내적으로는 선거를 앞둔 정치적 제스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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