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임동원씨가 평양을 방문하게 된 저간의 과정과 배경이 청와대측 설명으로 명쾌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특사파견 자체는 현재의 경직된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을 풀어나가는 데 하나의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평가를 전제로,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특사의 평양행이 기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특사의 활동은 국민여론과 미국 등 동맹국들의 입장을 충분히 파악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대단히 미묘하고 복잡한 게 사실이며, 이를 풀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확한 인식이 시급하다. 때문에 특사의 활동은 북한 핵과 미사일, 인권문제 등에 대한 한국민과 미국의 입장 등을 가감없이 북한당국에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특사의 활동 하나하나가 유리알처럼 드러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비밀거래하듯 음험한 분위기를 풍겨서는 역효과를 낼 뿐이다. 특사 파견이 성사된 과정을 놓고 이미 정치적 의도 등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을 현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지난주 발표된 금강산 관광 지원대책이 특사 파견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궁금한 일이다. 앞으로 특사의 활동 형식과 내용, 북한당국과의 합의사항 등이 의혹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면 남북 및 미·북관계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특사는 어디까지나 특사에 그쳐야 한다.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하는 특사인 만큼 북한 당국과의 대화는 폭넓게 하되 구체적 현안에 대한 합의까지 서둘러서는 곤란하다.

남북 당국간에는 여러 분야의 각급 대화채널이 이미 제도화돼 있으며, 구체적인 문제들은 여기로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은 현재 한국관광객의 아리랑 축전 참관과 식량 및 비료 지원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문제들은 남북 이산가족상봉 등 다른 현안들과 함께 공식적인 협상의 틀 속에서 추진돼야지 특사의 일회성 대화로 해결할 일은 아니다.

임동원씨는 현 정권의 특사가 아니라 대통령을 대신하는 국민의 특사라는 자세를 가져주기 바란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