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발사대로 역정낸 새 정부
"주한 미군과 중부 이남 보호"란 사드 취지에 무심하다는 인상 줘
친북·친중 '자주 외교' 부활하면 韓·美 동맹 균열 시간문제인데
속내 다른 두 정상 만나서 어떤 언사로 갈등 포장할 건가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제정치학계의 거두(巨頭) 케네스 월츠(Waltz)가 1979년 '국제정치이론(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을 통해 집대성한 신현실주의(neorealism) 학풍은 지난 40년 가까이 독보적인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신현실주의에 따르면 국제사회의 주요 행위자인 국가는 서로 생존과 국익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하는 안보 딜레마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국제 구조가 잉태하는 권력 정치의 속성이 어떠한 도덕·윤리 외교도 무력하게 만들며, 다자 협력의 미덕을 신봉하는 국제연합(UN)과 같은 국제기구도 강대국의 이익을 반영하는 보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신현실주의자들이 보는 국제 질서는 소수의 강대국들이 벌이는 파워게임 무대와 다름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주 국방을 갖추지 못한 나머지 대다수 국가는 강력한 동맹 파트너를 확보해 외부 위협에 대한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을 충족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과의 동맹을 축으로 북한 위협을 억제하고 중국·일본·러시아 관계를 관리해 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과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예외적이고 파격적인 대외정책의 공간은 그다지 넓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주어진 전략 환경에서 스마트한 외교를 펴 국익의 극대화를 꾀하거나 국제 구조가 알려주는 '정답' 대신 새로운 길을 모색하여 신현실주의적 구조주의(structuralism)의 운명론에 도전하는 두 가지의 선택이 존재한다.

2008년부터 불어닥친 세계 금융·재정 위기 속에서 G20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가져올 공멸(共滅)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미국·유럽연합(EU)· 중국·인도와 같은 거대 경제 세력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은 국제 구조가 허락한 한국의 위상을 최대치로 활용한 경우다. 그에 앞서 2005년 주창한 동북아균형자론은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외교의 주도권과 균형자 역할을 자처한 것으로, 미국 위주의 동맹 외교에서 벗어나 자주 외교를 표방했다. 그러자 미국과의 강력한 공조 관계에서 떨어져나온 한국이 역내 질서에서 소외됐고, 당초 기대와는 달리 한국의 전략적 입지가 오히려 축소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국제 구조를 뛰어넘는 이상론과 국제 구조를 활용하는 현실론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마음속으로는 이제까지 국제 구조가 알려준 원칙론을 마구 뛰어넘고 싶지만 미국과 국제사회가 어떻게 나올지, 국민이 그러한 모험을 지지할지 고민하고 있다. 기왕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드(THAAD)이지만 전임 정부 때 이미 배치가 시작됐으니 한·미 관계의 충격을 무릅쓰면서까지 철수를 요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드 발사대 6기의 배치 과정이 왜 투명하지 않았느냐고 역정을 냄으로써 본디 품었던 생각과 소신에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주한 미군과 한국의 중부 이남 지역을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사드 본연의 취지에 한국의 대통령이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대외에 천명한 결과가 됐다.

대통령을 포함한 외교·안보 진용의 대북관은 대개 일치하며 오래도록 일관성을 보여 왔다. 북한 정권을 압박하기보다는 포용하고 지원해야 하며, 모든 문제는 남북 합의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일본은 대북 경제 제재를 북한의 핵 포기 결심을 유도하는 필요 조치로 인식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대북 압박이 북한을 고립시키고 자극만 할 뿐 대화의 성사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라 여긴다. 새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햇볕정책 2.0으로 부르든 달빛정책으로 부르든 이를 뒷받침하는 국내외의 정치적 공간(political space)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시기에 비해 매우 축소됐다. 25년에 걸쳐 반복된 북핵 협상과 파국의 주기가 북한 정권의 대외 이미지에 돌이키기 힘든 불신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쉬운 남한 정부는 나중에 상대하고 미국과의 담판에 우선 올인(all in) 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복안이다. 워싱턴 당국은 때가 되면 북한과 대화를 하더라도 기존의 대북 압박 기조가 잘 유지돼야 '올바른' 대화가 가능하다고 여긴다. 친북(親北)과 친중(親中)을 모토로 한 한국의 '자주 외교'가 부활한다면 한·미 동맹의 신뢰에 금이 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한·미가 생각이 같아야 중요한 정책을 공 조할 텐데 속내가 서로 다르고 이를 피차 알고 있으니 정상회담에서 어떠한 외교적인 언사로 동맹 관계를 포장할지 걱정이다. 세계 질서를 만드는 강대국은 입맛대로 선택지(選擇肢)를 바꿀 수 있다. 우리는 그런가. 생각 있는 국민이라면 지도자가 시원하게 내지르는 자주 외교와 '우리 민족끼리'의 이상론보다는 꼼꼼하게 원칙과 실리를 직시하는 현실론을 지지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2/2017060203137.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