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현 국제부 차장
안용현 국제부 차장

북한 김정은은 아버지 사망 이후 5년5개월째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남한이라면 대선을 한 번 더 치렀을 시간이다. 그러나 늙어 죽을 때까지 북한을 다스릴 생각을 하는 김정은 입장에서 지금은 집권 초반기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올해 33세인 김정은이 김일성(82세 사망)이나 김정일(79세 사망)만큼 살면 앞으로 40년 이상 북한을 다스리게 된다. 임기에 쫓기지 않으니 남북, 북·미, 북·중 관계 등을 다루는 시간표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독재 왕조의 제1 명제는 체제 유지다. 김정은은 그 핵심 수단으로 핵과 미사일을 선택했다. 자신의 통치력을 핵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로 증명하려는 것이다. 북한 경제는 나름대로 굴러가고 있다. 400곳 넘는 시장이 있고, 집단농장 해체 등의 조치 덕분에 1990년대 후반처럼 대규모로 굶어 죽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김정은은 핵과 ICBM 개발을 끝낸 뒤에나 경제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시간표에서 중요한 해는 올해보다 북한 건국 70주년인 내년이다. 김정일은 1998년 8월 31일 건국 50주년 기념일(9월 9일)을 코앞에 두고 첫 장거리 로켓인 '대포동 1호'를 쏘아 올렸다. 이 로켓은 일본 열도를 넘어 1500여㎞를 날아가 주변국을 경악하게 했다. ICBM 개발을 위한 북한의 첫 걸음이었다. 그 직후 김정일은 헌법을 개정해 국방위원장 권력을 강화해 통치 전면에 나섰다. 김정은은 2008년 건국 60주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가 60주년 열병식을 20여일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김정일 뇌졸중은 당시 24세이던 김정은이 갑자기 '세자'로 책봉된 계기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새로 개발한 정밀 조종유도체계를 도입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가 5월3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건국 70주년을 맞는 김정은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병상에서도 핵 보유를 꿈꿨던 아버지 영전에 완성된 핵과 ICBM을 바치고, 자신의 권위도 인정받고 싶을 것이다. 김정은은 6월에 '소년단 8차 대회'를 열고, 연말에는 '만리마 선구자 대회'를 개최한다. 체제 공고화를 위한 대규모 군중대회들이다. 지금 김정은은 개혁·개방엔 관심 없고 독재 권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는 10월 4일은 제2차 남북 정상회담 10주년이다. 새 정부에 이날의 의미는 남다르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국가정보원 3차장, 문정인 연세대 교수 등이 주역이었다. 지금은 대통령, 국정원장 후보자, 통일·외교·안보 대통령 특별보좌관이 됐으니 10년 전 정상회담의 추억이 강렬할 것이다.

남북 관 계는 서두르면 우리에게 유리할 게 없다. 40년 통치 기반을 닦으려 하는 김정은이 몇 년 뒤 한·미에 어떤 정권이 들어설 줄 알고 핵·미사일 외투를 벗기려 하는 대화에 응하겠는가. 문재인 정부가 '10·4 정상회담' 10주년 등 우리 시간표만 봐선 안 되는 이유다. 유화책을 펴면 북한이 바뀔 것이란 기대는 압박하면 북한이 곧 망한다는 기대만큼이나 순진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31/20170531035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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