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칭찬한 새 정부 첫 개혁들… 말로 지시하면 풀릴 쉬운 것들뿐
하지만 북핵과 對미·중·일 관계, 대통령 善意만으론 해결 불가능해
5·24조치 일방적 해제도 어려워… YS의 섣부른 개혁 실패 답습 말길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좋은 정치가 집단적 유포리아(행복감)를 빚어낸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폭 행보로 순항 중이다. 취임 2주 차 기준으로 향후 5년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87%다(한국갤럽 조사). 국민 10명 중 9명이 문 대통령이 잘할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대구 경북에서도 문 대통령이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85%다.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55%도 그가 잘할 것이라 답했다. 대선에서 과반에 못 미친 대통령이 보름 만에 국민 통합을 이룬 셈이다. 감동의 정치가 목마른 국민의 갈증을 풀어준 덕분이다.

역대 대통령 모두 취임 직후엔 지지도가 높았지만 이명박 정부(79%)와 박근혜 정부(71%)에 비해서도 문재인 정부는 최고 수준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모식에서 문 대통령 스스로 "국민의 과분한 칭찬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할 정도다. 열린 인사와 과감한 업무 지시로 신선한 충격을 준 대통령으로선 겸손한 발언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현대 정치사의 냉혹한 교훈이 담겨 있다. 모든 대통령이 초반의 뜨거운 지지와 후반의 참담한 지지율 추락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과잉 기대와 과잉 환멸의 희비 쌍곡선에서 자유로운 한국 대통령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함으로써 꼭 성공하겠다는 결의를 되새긴다. 박근혜 정부가 자행한 독선과 배제의 정치와 선명하게 대조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에겐 김영삼 정부야말로 최고의 타산지석이다. 취임 직후의 개혁 행보로 대중의 열광적 환호와 함께 임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을 빼닮았다.

YS는 취임 열하루 만에 하나회를 척결했다. 전광석화 같은 군부 숙정으로 지지도가 96%까지 올랐다. 그는 또한 소통과 인사의 달인이자 청렴한 정치인이었다. 취임 6개월 후 전격 시행한 금융실명제로 지지율 80%대 고공 행진을 자랑했다. 그러나 지지율에 집착해 민심을 겨냥한 승부수를 남발함으로써 몰락하게 된다. 집권 5년 차에 20% 아래로 추락하더니 퇴임 때는 한 자릿수였다. 2015년 한국갤럽의 전직 대통령 국민 평가에서 YS는 최저를 기록했다. 전두환보다 낮은 1%였다. 포퓰리즘의 깜짝쇼가 화를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첫 수석보좌관회의가 열린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과잉 기대와 과잉 환멸의 주기는 갈수록 짧아진다. 지금까진 대통령 지시만으로 풀 수 있는 사안으로 국민적 지지를 끌어냈지만 그게 무한정 계속될 순 없다. 대통령 개인의 소탈함과 인간미도 곧 익숙해진다. 유포리아가 식게 되면 국민은 실제로 바뀐 게 뭔지 묻게 된다. 경제와 안보 위기가 최대 관건이다.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에 성과가 있는지 묻는 날이 곧 온다. 정부 주도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 큰 도전은 안보 위기다. 북핵 문제와 한·미, 한·중, 한·일 관계는 문 대통령의 선의(善意)로 풀 수 없다. 김정은의 폭주(暴走)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헤게모니 게임은 더욱 위태롭게 요동칠 것이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교수의 대북 유화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딜레마를 선명히 보여준다. 북한 도발이 심화되고 유엔 대북 제재가 강화되는 국제정치적 국면에서 한국 정부의 일방적 유화책은 먹히기 어렵다. 국내 여론의 지지도 기대 난망이다. 소통과 통합의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의 틀을 바꾸면서 국민적 동의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다. 문정인 특보의 발언이 불러온 소란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져올 거대한 사회적 갈등의 작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은 조만간 북한 문제의 중대 도전 앞에 마주 서게 될 것이다.

쾌조의 스타트를 끊은 문 대통령은 개혁의 동력을 최대한 살려가야 한다. 일의 선후를 가려 81만개 공적 일자리 공약 같은 지속 불가능한 정책은 과감히 조정해야 한다. 거친 당위론으로 개혁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문정인 특보 말과 달리 5·24 조치 해제나 개성공단 재개는 긴급한 현안이 아니다. 개혁 전도사 YS가 실패한 이유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섣부른 세계화와 금융자유화가 초래한 IMF 사태가 공(功)조차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졸속과 조 급함이 개혁 자체를 파괴하고 만 것이다. 갤럽 조사에서 문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 1위가 '초지일관'인 게 의미심장하다. 모든 것엔 때와 경중(輕重)이 있다. 포퓰리즘의 유혹과 과속을 경계해야 마땅하다. 문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윤리는 국민의 칭찬과 사랑 속에 퇴임하는 사상 첫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성공한 대통령 그 한 사람을 가질 때가 되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25/20170525036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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