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보름도 안 된 22일 연차휴가(年次休暇)를 내고 경남 양산 사저(私邸)에 머물렀다. 문 대통령은 전날 국가안보실장 등 인선을 직접 발표한 뒤 오후 1시쯤 청와대를 출발했다. 연차는 해마다 직장인에게 주어지는 유급휴가다. 공무원이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국민에겐 대통령의 연차휴가라는 게 낯선 것도 사실이다. SNS에는 '대통령도 하긴 공무원이구나, 왕이 아니라…' 같은 반응이 올라왔다.

▶대통령의 1년 휴가 일수가 21일이란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대통령 자리가 출퇴근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휴가를 다 쓴 대통령은 한 명도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3년은 나라 안팎이 시끄러워 여름휴가를 못 떠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수해(水害)로 휴가를 취소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에 아들 문제로 관저에 머물렀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집권 5년 차 중반까지 휴가로 무려 336일을 썼다지만 그건 국정이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그 나라 얘기다. 그런 부시 대통령도 휴가 중에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잘못 대응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만물상] 대통령의 연차휴가

▶양산에 도착한 대통령이 양복도 벗지 않고 반려견을 쓰다듬는 사진도 공개됐다. "대통령님 나와주세요"라는 방문객 외침에 대통령은 밖으로 나와 일일이 사진 촬영에 응했다. 경호실장이 사진사 역할을 했다. 이런 일요일 오후의 평온함을 깬 것은 북한의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였다. 1주일 만에 또 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발사 8분 만에 그 사실을 보고받고 NSC 상임위 소집을 지시했다. 이어 1시간 20분 동안 다섯 차례 보고와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비서관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받아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하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잡혔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연차휴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어제는 경호용으로 개조한 버스 한 대로 부산 영도에 있는 모친을 만나고 돌아왔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첫 연차휴가에 여러 의미를 담으려 했던 것 같다. 연차휴가 사용 의무화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은 문 대통령 공약이었다. 직무 수행에 공사(公私) 구분이 없었던 전임자와 대비하려는 의 도도 읽힌다. 오늘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행사 참석도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애초 의도야 어쨌든 북한 미사일 도발이란 돌발 상황이 벌어진 마당에도 대통령이 사흘씩 있어야 할 곳이 그곳인지는 의문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가 연차휴가 한번 홀가분하게 다녀올 만큼 편한 게 아니라는 것은 문 대통령도 이번에 새삼 알았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22/20170522029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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