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마다 대북·대외 정책은 정파와 이념의 전쟁터였다
盧 정부의 자주파·동맹파 내전을 현장서 목격한
文 대통령이 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정의용 전(前)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외교 참모다. 그는 문 대통령 취임 후 이뤄진 중요 외교 행사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아베 일본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통화할 때 바로 옆자리에 배석했던 인물이 정 전 대사다. 어제 청와대를 찾은 미국 백악관 관계자들을 만난 사람도 정 전 대사였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 잠깐 들르는 방식으로 백악관 관계자들을 만났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일주일 만에 정 전 대사는 '문재인 외교'의 키맨(keyman·중심 인물)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아직 공식 직함이 없다. 엄밀히 따지면 직업 외교관 출신의 민간인 신분이다. 이런 어색한 상황이 신경 쓰였는지 며칠 전부터 청와대에선 그를 '외교·안보 태스크포스(TF) 단장'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아직 정식 임명장을 준 것도 아니고, 태스크포스는 발족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임시 직함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 진용이 짜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승리가 확정된 날 곧바로 취임했다.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갑작스레 대선을 치렀고, 통상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70일 가까이 주어지는 대통령직 인수(引受) 및 준비 기간을 가질 수 없었다. 출범 일주일 만에 새 정부의 인사를 마무리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 표결을 거쳐 첫 내각 구성까지 앞으로 한 달 이상이 걸릴 것이다. 문 대통령으로선 어쩔 수 없이 이전 정부 각료들과 동거(同居)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미국 정부대표단과 비공개 만남-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한 매튜 포틴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등 미국 정부대표단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다른 분야는 몰라도 외교·안보에서 전(前) 정부 각료들 도움을 받는 모습을 극도로 꺼리는 것 같다. 사실 문 대통령이 각국 정상들과 통화할 때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을 배석시키면 된다.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하면 굳이 '청와대 외교·안보 태스크포스 단장'이라는 임시 직함까지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번거로운 쪽을 택했다. 문 대통령은 딱 한 번 전 정부 각료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날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다. 법적으로 이들이 여전히 NSC 상임 멤버이기 때문에 다른 선택 여지가 없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행동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은 이전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을 대표적 적폐(積弊)로 꼽았다. 그런 문 대통령 처지에서 한일(韓日) 위안부 합의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조기 배치의 주역들과 함께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결코 득(得) 될 게 없는 일이다.

한국 정치에서 외교·안보 분야는 이념의 전쟁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 주기로 정권 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각 정권의 대북(對北)·대외 정책은 우리 내부적으로 가장 심각한 갈등을 불렀고 첨예한 대립으로 이어지곤 했다. 문 대통령이 처음 공직을 맡았던 노무현 정부 초기가 가장 극심했다. 노(盧) 정권 출범 첫해인 2003년 미국의 요청에 따른 이라크 파병(派兵)을 놓고 친미(親美)·반미(反美) 논쟁이 불거지면서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 이듬해 초엔 외교부 내에서 '자주파'와 '동맹파' 사이에 내전(內戰)이 일어났다. 외교부 내부 고발로 시작된 이 사건으로 외교부 주요 간부가 줄줄이 청와대의 감찰을 받았고, 승자는 자주파의 몫이었다. 그때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이었고, 자주파의 득세(得勢)를 바라보는 미국의 눈을 의식해 서둘러 외교장관으로 임명한 인물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다. 미국 근무 경험이 가장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미 동맹의 신뢰는 크게 흔들린 뒤였다. 우리 군인 3000여 명을 파병하고서도 미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감사(感謝) 인사'조차 받지 못한 것은 노 정권이 자초한 일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과 협치(協治)를 약속했다. "야당에도 국가 안보 관련 상황을 브리핑하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실제 협치가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곳이 외교·안보다. 한반도 분단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면서 통일을 준비하고, 한국을 거세게 몰아붙이는 주변 강국들의 도전을 이겨내려면 무엇보다 국론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번번이 실패했다. 정권의 '코드'와 '색깔'을 고집한 게 가장 큰 이유다. 그 결과 한국의 외교·안보는 줄곧 '분열된 집(House Divided)'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외(對外) 정 책은 국내에서 시작한다'는 경구(警句)와 반대되는 길로만 달려왔던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맞서 싸워야 할 외교·안보 분야의 적폐는 바로 이런 상황이다. 새 정부에서는 자주파·동맹파, 남남(南南) 갈등 같은 말이 사라지고 대신 '국익파'로 채워졌으면 싶다. 그런 희망의 단초를 보여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문 대통령이 조만간 단행할 외교·안보 인선(人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6/2017051603440.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