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3월 초 대만을 여행했다. 맛있는 음식과 깨끗한 환경, 친절한 태도도 인상적이었지만, 대만인과 대륙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식당, 관광지, 지하철에서 중국 여행객들은 같은 언어와 음식문화로 현지인과 하나가 되었다. 1987년 대만 탐친법(探親法·이산가족찾기법) 제정 이후 30년 만에 양측은 사회적 통합에 성공했다. 중국·대만 주민은 누구나 양쪽을 오가며 여행하고, 공부하고, 사업을 할 수 있다. 첫해 62만명이었던 상호 방문객은 이제 1000만명에 육박한다. 수천 기 미사일로 상대방을 겨누는 베이징과 타이베이 정부지만, 민족애를 발휘해 역사를 전진시켰다.

양안(兩岸) 모델을 남북 관계에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역사 배경과 정치군사 환경, 경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교훈은 얻을 수 있다. 첫째 교훈은 정치군사적으로 아무리 대립해도 상대를 대화·협력 파트너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양측 정부가 반관반민의 기구를 내세워 파국을 막는 정치적 큰 틀, 즉 '92공식(共識)'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셋째는, 군사 갈등은 그대로 두고 추진한 민간 교류 협력이 처음엔 미미했으나 나중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커졌고, 양측 군사 대결이 하찮게 보일 정도로 관계의 질적 변화까지 불러왔다는 점이다. 중국 샤먼(廈門)과 대만 진먼다오(金門島)에는 여전히 포대가 있지만, 양측 주민들은 군 기지를 가리키며 농담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양안 모델이 한반도에 적용되려면 김정은이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체제 불안감과 대미 불신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에 대비하면서, 김정은의 불안감은 낮추고, 협력은 확대해 나가는' 고난도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새 정부는 먼저 북한을 대화·협력 파트너로 인정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북핵에 대한 한·미 동맹의 군사적 대응력은 높여야 한다. 위협 수단으로서 북핵의 가치를 떨어뜨려야 북한이 대화에 나올 가능성도 커진다. 사드든 전술핵이든 후보 때 공약은 잊고 열린 자세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서해 연평도에서 가까운 장재도방어대와 무도영웅방어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양안 모델의 두 번째 교훈인 '교류 협력을 위한 큰 틀'을 위해, 새 정부는 '북한 체제 보장'과 '북의 단계적 핵 폐기'를 주고받는 방안을 6자회담국과 추진해볼 수 있다. 북한이 일정 기간(가령 2~3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핵을 동결하고, 한·미·일·중·러가 북한 체제를 보장하며 경제 회복을 돕는 방안이다. 북한 행동에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도 다시 열 수 있을 것이다. 첫 단계가 성공하면 북핵 완전 폐기와 평화협정 맞교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새 정부는 미·중이 동북아의 큰 그림을 그리기 전에, 주도적으로 북핵 해법을 마련하고 북한과 4강 설득에 나서야 한다.

'군사 갈등은 그것대로 대비 하고 민간 협력도 추진한' 양안 모델의 세 번째 교훈도 활용할 수 있다. 의료, 환경, 농어업, 조림 등 비군사 분야가 우선 협력 대상이다. 이런 것이 쌓이면 남북 관계에도 질적 변화가 올 수 있다. 중국-대만 지도자들은 성곽 위에선 창을 높이 쳐들어도 그 아래에선 '교류 협력의 성문(城門)'을 여는 지혜를 발휘했다. 한민족(韓民族)이라고 왜 못하겠는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0/20170510030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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