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곳은 일본, 음악의 고향은 북한, 현재 거주지는 한국. 재일 교포 3세 문양숙(43)은 가야금 하나로 일본과 남북한을 누볐다. 1993년 처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나를 떨어뜨린 금강산 가극단이 후회하게 만들어주리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복수심에 선택한 한국행이 연주자 문양숙의 삶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악계 흐름까지 바꿔놓았다. 그가 작곡가 박범훈과 함께 만든 25현 개량 가야금은 가야금 연주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악기가 됐다.

"지금도 전국에서 프로 연주자들이 25현 가야금 배우려고 저를 찾아와요. 어제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25현 가야금 협주곡을 연주했고요."

문양숙은 일본 나라현에서 북한 국적의 재일 교포 3세로 태어났다. 가야금을 처음 접한 10세 때부터 재능이 남달랐다. 아침 6시부터 밤늦게까지 매일 연습했고, 또래 연주자 중에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조총련 영재 유학 프로그램에 발탁돼 북한에 갈 기회를 얻었다. "평양음악무용대학 전문부 과정에서 3년 동안 21현 개량 가야금을 배웠어요. 개량 가야금의 대가인 김영실 선생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지요."
 
국립극장에서 만난 문양숙이 25현 가야금으로 북한 곡 ‘황금산의 백도라지’를 들려줬다. “복덩어리가 들어왔다!”고 칭찬받았던 그 곡이다.
국립극장에서 만난 문양숙이 25현 가야금으로 북한 곡 ‘황금산의 백도라지’를 들려줬다. “복덩어리가 들어왔다!”고 칭찬받았던 그 곡이다. /조인원 기자

북한에서 받은 음악 수업은 혹독했다. "북한은 1970년대에 국악기 개량 사업을 하면서 모든 국악기를 서양의 7음계에 맞췄어요. 북한 학생들 기량이 엄청나요. 손가락 각도까지 착착 맞출 정도죠."

그는 조총련 산하 단체인 금강산 가극단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오디션을 치렀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조총련 고위 간부의 딸이 대신 합격하는 걸 보면서 배신감이 들었어요. 엄마한테 '나 한국 갈래. 전통 가야금 제대로 배워서 1인자가 될 거야'라고 선언하고 곧바로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바꿨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1993년 열아홉 살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12현 전통 가야금을 한국에 와서 처음 배웠어요. 산조와 정악도요. 같은 가야금인데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처럼 충격을 받았죠. 명주실의 낭창낭창한 선율이 어찌나 좋던지."

이듬해 중앙대 국악과에 입학한 그는 당시 국악과 교수였던 박범훈을 찾아갔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던 박 교수 앞에서 북한곡 '황금산의 백도라지'를 연주했다. 북한에서 들고 온 21현 가야금으로 현란한 양손 연주를 끝내자 박범훈이 소리쳤다. "복덩어리가 들어왔다!" 박 교수는 북한 개량 가야금의 다양한 주법을 보고 흥분했다.

그때부터 문씨는 박 교수와 함께 25현 가야금을 만들었고 전파에도 앞장섰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프로 연주자부터 국악과 교수들까지 가르쳤다. 처음엔 변화를 거부하는 국악계 반발도 겪었지만 지금은 전국 국악관현악단 대부분에서 25현 가야금이 정규 편성 악기로 자리 잡았다. 1998년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한 문씨는 현재 가야금 수석 연주자이자 '25현 가야금의 1인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12일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국립국악관현악단 '베스트 컬렉션―오케스트라 아시아'에서 가야금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다. 일본 작곡가 미키 미노루의 협주곡 '소나무'를 연주할 예정이다. "당분간은 일본에 돌아갈 계획이 없다"는 그는 "지금처럼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25현 가야금을 연주하고 가르치면서 행복한 연주자로 살고 싶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4/20170504000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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