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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김정은의 선량함을 믿는 '햇볕 낙관주의'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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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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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논설위원
한민족 통치 엘리트의 유전자엔 '낙관 DNA'가 새겨져 있는 것이 틀림없다. 위기 앞에서 대책도 없이 낙관론에 취하는 습성이 있다. 임진왜란 전 왜(倭)에 다녀온 통신사들이 정반대 보고서를 올렸다. 선조는 그중 침략 가능성이 없다는 쪽을 채택해 국난(國難)을 자초했다. 병자호란 때도, 6·25 전에도 그랬다. 늘 징후는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위험을 무시하고 망하는 길을 가곤 했다.

지금 한반도 긴장을 바라보는 국민 마음엔 두 가지 심정이 교차한다. 하나는 불안감이고, 또 하나는 의아함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까지 왔느냐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사실은 90년대 초반에 확인됐다. 북한이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협박해댄 것도 20년이 넘었다. 그 사이 정권이 네 번 바뀌고 온갖 대북 정책이 나왔다. 국방비도 물쓰듯 썼다. 그런데 왜 이런 최악의 상황이 됐느냐는 것이다.

그 의문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햇볕정책'의 낙관론이다. 2001년 평양을 다녀온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했다. 북이 핵을 개발하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장담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협상용'이라고 변호했다.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고, 공격용도 아니라고 했다.

그 믿음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는 북한이 확인해주었다. 20여년간 북한은 단 한 순간도 핵 프로그램을 중단한 적이 없다. 틈만 나면 서울을 잿더미로 만들겠다며 인질 전략을 펴왔다. 며칠 전만 해도 오산·군산·평택 기지를 거명하며 초토화하겠다고 협박했다. 북한의 선의를 믿었을 두 전직 대통령이 지금 상황을 본다면 뭐라 했을까.

햇볕정책의 순진한 낙관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북한 미사일 공격에 소극적 대비로 일관했다. 90년대 초 '로동1호' 이후 북한은 끊임없이 미사일 성능을 개선해왔다. 김대중 정부 때도 핵개발이 계속되고 대포동미사일이 일본 인근까지 날아갔다. 그런데도 미국 MD(미사일 방어 체제) 편입 논란을 이유로 방어망 구축을 주저했다. 입으로만 한국형 방어 체제(KMD)를 만들겠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패트리엇 PAC2와 함대공 SM2 미사일을 들여왔다. 그러나 하층(下層) 방어 능력만 갖춘 것이었고, 그나마 요격 성공률도 낮았다. 2006년 북한이 핵실험에 나서면서 핵개발을 공식화했다. 그래도 노무현 정부는 실효성 적은 패트리엇미사일로 5년을 버텼다.

우파 정권으로 바뀐 뒤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선제공격 개념을 포함한 '킬 체인' 구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예산도 적고 정책 의지도 약해 추진 속도는 미미했다. 이 대통령은 안보에서도 어떻게 돈을 적게 쓸까에 매달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군(軍)을 우대했지만 의사소통이 부족했다. 군 수뇌부조차 대통령을 잘 만나지 못했다. 이·박 대통령 모두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군 통수권자로서 철학이 미흡했다. 절박함도 약했다.

보름 전 이스라엘이 4단계 미사일 요격망을 완성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적의 미사일 공격을 4중으로 철벽 방어하는 시스템이다. 이스라엘의 국방비는 한국의 절반도 안 된다. 우리는 두 배나 더 많은 돈을 쓰고도 이 지경이다. 이스라엘은 대비했고 우리는 대비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절박했고 우리는 절박해 하지 않았다. 그 차이가 안보 위협으로 돌아와 우리 목을 죄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6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15일ㆍ태양절) 개최된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모습을 보도했다. /연합뉴스

이제 누구나 동의할, 심지어 친북주의자도 부인 못 할 사실이 있다. 북한 김정은이 결코 합리적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정은 제거'가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는 데 국제사회가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 땅엔 김정은의 선량함을 믿는 '햇볕 낙관주의'가 여전하다. 문재인 후보는 TV 토론에서 북한이 '주적(主敵)'이라고 말하기를 거부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거론하기도 했다. 대화할 때도 총을 드는 것이 안보다. 북한을 주적이라 하면 대화가 안 된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북한이 깡패짓을 계속하는데 지금 정상회담을 거론할 때일까.

안철수 후보는 북한에 5억달러를 보낸 불법 송금 사건에 공과(功過)가 있다고 했다. 어떤 공이 있다는 것일까. 5억달러가 핵과 미사일로 돌아왔는데 분통 터지지도 않나.

북한과 대화도 필요하고 협상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대화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김정은은 고모부를 총살하고 백주대낮에 남의 나라에서 이복형까지 살해했다. 이런 인물이 햇볕정책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햇볕으로 감싸주면 합리적 대화가 가능하단 말인가.

햇볕정책은 이론적으로 훌륭한 정책이다. 그러나 비현실적 대북관이 대책 없는 낙관론을 낳는다는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다. 설마 하며 대비하지 못하다 이 꼴이 됐다. 북한에 속았던 안보의 '잃어버린 20년'이 원통할 따름이다. 그렇게 속고도 또 속을 텐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20/20170420035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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