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체제가 출범하고 6.15남북정상회담 직후 푸틴의 방북 등으로 빠르게 호전되기 시작한 북ㆍ러 정치.군사적 관계가 최근 경제.문화적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이같은 양국 관계개선은 북미관계에 적극적이었던 클린턴 행정부의 뒤를 이어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는 부시행정부가 출범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양국 관계 호전은 군사부문에서 시작됐다.

2000년 7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지난해 4월27일 김일철(金鎰喆)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방위산업 및 군사장비 분야 협력 협정'과 `2001년 군사 협력 협정' 등 두개 협정을 체결했다.

일리야 클레바노프 산업과학기술부 장관(당시 부총리)은 지난해 협정과 관련, '과거 북한에 제공됐던 무기들의 현대화에 관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3개월 뒤인 지난해 7월26일부터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장장 23박 24일간의 러시아 방문길에 올라 양국 관계를 돈독히 다졌고 8월4일 양국간 전방위 협력을 명시한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북러 관계는 에너지 분야의 현대화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에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계 사업 등으로 확대됐고 이후 러시아 전문가들이 북한을 수시로 방문하는 등 협력이 증진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1.29) 이후 남한 방문(2.19∼21)시 대북 강경발언 및 이후 핵태세 검토보고서(NPR) 공개와 한미합동군사연습 개시(3.21) 등으로 미국의 대북강경책이 더 고착화되는 가운데 북러 협력관계는 한 층 강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대통령 극동지역 전권대표의 평양 방문(10∼12일) 때 김영재 북한 무역성 부상(차관)과 러시아의 올레그 미하일렌코 러시아연방 극동투자회사 총사장이 `협조비망록'에 합의, △라진항을 통한 러시아의 화물 환적과 △라진항의 항만시설 재건 및 현대화 △통신기반시설 현대화 등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고 △임업과 건설, 농업 분야 등의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17일 김정일 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들을 대거 대동한 채 안드레이 카를로프 북한주재 러시아대사가 마련한 러시아 민속명절 `마슬레니차(Maslenitsaㆍ사육제)' 행사에 참석했다.

또 최근에는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러시아 클레바노프 장관과 만나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제의해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고 올 하반기 `무역경제 및 과학기술협조 정부간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최 의장은 또 20일 모스크바시 유리 루즈코프 시장과 만나 70명의 북한 노동자들을 모스크바 소재 공장에서 전문교육을 실시하는 문제를 포함한 상호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으며 내달 5일에는 평양-하바로프스크 정기항로가 재개된다.

최 의장이 이번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이룩한 성과는 지난 10년간 북러 양국간의 소원한 관계가 끝났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24일에는 모스크바 크렘린 위수사령관 세르게이 스트리긴 중장을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대통령 악단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과 내달 29일 시작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등을 계기로 문화예술 교류가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호놀룰루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센터(APCSS)에서 안보학을 강의하는 만수로프는 '요즘 러시아 대사는 1주일에 거의 한 번꼴로 김정일을 만난다'면서 '냉전시절로 회귀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가 북러관계의 강화를 더 부채질했다'고 말하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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