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혁 정치부 차장
임민혁 정치부 차장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최근 한·중·일을 순방하면서 한 발언 중 '13억5000만달러(약 1조5255억원)의 실패' 부분에 눈길이 갔다. 틸러슨 장관은 "20년간의 북한 비핵화 노력이 실패했다"면서 "미국은 북한에 13억5000만 달러를 지원했지만 그 결과는 북한의 핵 능력 강화와 미사일 발사였다"고 했다. 이 액수는 1995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이 북한에 지원한 식량·에너지 등을 모두 합한 금액이라고 한다. 북핵 협상을 오래 담당한 우리 외교관들은 "북한 비핵화 노력을 이렇게 구체적인 액수로 환산한 미국 측 언급은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가 '비즈니스 마인드'에 기초해 진행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평생을 사업가로 살아온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주축이니 그럴 만도 하다. 과거 북핵 협상·결과 등을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로 계량화하는 것이 이들의 판단에 가장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들은 지금 '그렇게 투자금을 쏟아부었는데 오히려 빚만 늘었다. 사업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결론으로 치닫고 있다. 틸러슨이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는 단정적인 말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폐기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외교부 브리핑 룸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내외신 공동기자회견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외교부 브리핑 룸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내외신 공동기자회견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그렇다면 비즈니스 마인드에 기반해 내놓을 새로운 대북 정책은 어떤 형태일까. 일단 추가 비용을 최소화할 게 분명해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제타격'은 우선순위가 되기 어렵다. 군사 공격은 정치·외교적 고려를 제외하고 단순히 경제적 측면만 봐도 단기간 비용이 가장 큰 선택지다. 2011년 리비아 공습 때 사흘간 발사한 미사일 비용만 2500억원이 넘었다. 전면전으로 번지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미국은 북한이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 배치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선제타격'을 명목상 카드로만 남겨둘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이른바 '햄버거 협상'에 나설 것 같지도 않다. 북한은 비즈니스로 치면 사기(詐欺) 전과 10범쯤인 최악의 신용 불량자다. 아무리 트럼프가 '협상의 달인'이라도 북한과의 1대1 거래가 갖는 위험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언급되는 게 '중국 아웃소싱'이다. 중국 팔을 비틀어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비용도 적게 들고, 비용 대비 효율도 높다. 중국 아웃소싱은 큰 틀에서 오바마 행정부 정책과 차이가 없지만, 트럼프는 오바마가 주저했던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 제재) 카 드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경제 마찰로 발생하는 손실은 다른 동맹국들에 분담시킬 가능성이 크다. 외신들은 트럼프가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자국 방위를 위해 얼마를 쓰고 있느냐"고 꼬치꼬치 묻는다고 전한다. 한·미의 손익계산서가 완벽히 일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를 최대한 줄이는 게 우리 외교의 숙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23/20170323035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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