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티 前 핀란드·조선친선협회장
핀란드 친북 단체서 주체사상 공부… 김정일에 생일 축하편지도 보내
7회 방북하며 북한 현실에 환멸 "친했던 北 외교관 처형돼 충격"
 

영어로 발행된 북한의 체제 선전물에 100번 가까이 이름이 등장하는 핀란드인이 있다. 지난 2009~2014년 핀란드·조선(북한) 친선협회장을 맡았던 안티 시카-아호(Antti Siika-aho·31)씨다.

그는 북한 당국 공식 초청으로만 7번 방북했을 만큼 북한과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2013년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최근 헬싱키에서 만난 안티씨는 "북한 체제는 붕괴 직전의 벼랑 끝에 서 있다"며 "탈북하려는 옛 친구들이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돕고 싶다"고 말했다.
2014년 핀란드·조선친선협회를 떠난 안티 시카-아호씨는 현재 핀란드 집권당인 중도당 청년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경화 특파원
2014년 핀란드·조선친선협회를 떠난 안티 시카-아호씨는 현재 핀란드 집권당인 중도당 청년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경화 특파원
북한에 대한 그의 첫 기억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한 광명성 1호 발사 뉴스를 봤다"며 "평소 국제 정치에 관심이 많았는데 북한의 '주체사상'을 공부하면서 그 나라와 가까워졌다"고 했다. 안티씨는 핀란드 내 친북(親北) 단체인 주체사상 공부 모임과 핀란드·조선친선협회에 가입했다. 이들 단체에서 북한 기관과 교류하면서 영어로 된 북한 체제 선전물을 핀란드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다. 당시 북한에선 이른바 '고난의 행군'으로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상황이었지만 그런 현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안티씨는 2002년 김일성 출생 90주년 행사에 초청받아 처음 방북했다. 2012년 7번째 방북 때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직접 봤다. 그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연로한 원로들이 일렬로 서서 40분 넘게 (김정은을) 기다리더라"며 "내 또래인 김정은이 할아버지뻘인 원로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직접 보고 놀랐다"고 했다.
 
2014년 핀란드·조선친선협회를 떠난 안티 시카-아호씨는 현재 핀란드 집권당인 중도당 청년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경화 특파원
2014년 핀란드·조선친선협회를 떠난 안티 시카-아호씨는 현재 핀란드 집권당인 중도당 청년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경화 특파원
안티씨는 2009년 핀·조친선협회 회장이 됐다. 그는 "노동당 창당일이나 김일성·김정일 부자 생일마다 축하 이메일을 보내는 게 주된 일이었다"며 "무슨 기념일만 되면 북한의 대외문화연락위원회라는 곳에서 '축하 편지라도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다"고 했다. 편지는 언제나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축하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같은 구절로 시작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신해 당신의 편지에 감사드린다'는 답신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안티씨는 북한의 선전과 현실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북한 관리들은 핵개발이나 인권 문제에 대해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그 주장이 허구라는 게 명백해지면서 북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핀·조친선협회에서 활동하던 동료들도 하나둘 떠났다.

그는 2013년 말 북한에서 장성택이 숙청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성택 계열로 알려진 박광철 당시 주(駐)스웨덴 대사 부부가 본국으로 강제 소환됐고 연락이 끊겼다. 안티씨는 "박광철과는 맥주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나누던 친구 사이였다"며 "나중에 그가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북한 초청 및 축전 요청에 응하지 않은 것도 그때부터였다.

안티씨는 2015년 핀란드 집권당인 중도당의 청년 사무국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최근 헬싱키시 당국에 고위탈북자 보호 시설을 만들자고 공식 제안했다. "태영호 전 영국 공사 같은 엘리트 탈북자가 앞으로 늘어날 겁니다. 탈출하려는 북한 해외 주재원들에게 '우리가 도와주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7/20170317000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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