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관련 제재]

말레이 체류 北 노동자 1000명
그 중 동남아 공작원도 상당수… 외화벌이·공작활동 큰 타격
용의자 리정철은 北으로 추방, 검찰 "충분한 증거 못찾았다"
 

말레이시아가 2일(현지 시각)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해 2009년 북한과 맺었던 비자 면제 협정을 전격 파기했다. 사건 직후인 지난 20일 평양 주재 말레이시아 대사를 소환한 데 이어 두 번째로 취한 외교적 제재이다. 말레이시아 언론은 북한과 단교(斷交) 카드까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히드 하미디 말레이 부총리는 이날 "다음 주 월요일(6일)부터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북한인은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고 현지 베르나마통신 등이 전했다. 그는 "국가 안보를 위해 북한과의 비자 면제 협정을 파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평양으로 도주한 용의자들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을 암살했는데도 수사에 협조하기는커녕 "말레이시아 경찰 수사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며 발뺌으로 일관해 왔으며, 말레이시아는 이런 북한에 분노해왔다. 말레이시아를 방문 중인 북한 대표단의 리동일 전 유엔 대표부 차석대사는 이날 쿠알라룸푸르 주재 북한 대사관 앞에서 북한 범행 일체를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문제의 사망자는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며 VX라는 화학무기를 사용한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남 시신을 인도해 달라는 종전 요구를 반복했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체포한 유일한 북한 국적자인 리정철을 3일 북한으로 추방한다고 이날 밝혔다. 모하메드 아판디 알리 검찰총장은 "기소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정일 암살의 여파로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무비자 협정이 8년 만에 파기됨에 따라 북한은 동남아 공작과 외화벌이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현재 말레이시아에 체류하는 북한 주민은 500~1000여명으로 추산되는데, 대부분 건설 현장이나 광산, IT 회사 등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북한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맺고 있는 '무비자 협정'을 악용해 공작원과 해커 등을 말레이시아에 수시로 파견해 각종 불법 행위를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공개된 유엔 북한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보고서를 보면, 2016년 7월 말레이시아에 있는 북한 위장 기업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즈(글로컴)'는 중국에서 아프리카 에리트레아로 군사용 통신 기기를 수출했다. 이 회사는 북한 대남공작 기구인 정찰총국이 운영하는 회사라고 한다.

북한 대사관에 은신 중인 현광성(2등 서기관)과 김욱일(고려항공 직원) 등도 북한 해외 공작과 관련이 깊다. 외교 소식통은 "말레이시아에 취항도 하지 않는 고려항공이 왜 쿠알라룸푸르에 지점을 두고 있겠느냐"며 "각종 불법행위를 돕기 위한 공작 요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미가 고려항공을 독자 제재 대상에 넣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북한은 또 동남아에서 사이버 도박장 등을 운영해 상당한 불법 외화를 버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가 북한과 단교까지 갈지는 김정남 암살 수사 상황과 북한 태도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암살 배후가 북한임을 입증하는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거나, 북한이 끝까지 '오리발' 을 내밀며 말레이시아를 비난한다면 '단교 카드'가 나올 수 있다. 양국은 1973년 수교했으며 '무비자 협정'을 체결할 만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현지 소식통은 "말레이시아 내 반북(反北) 정서가 높은 만큼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 추방, 평양 주재 말레이 대사관 폐쇄, 북한 노동자 비자 취소 등의 후속 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03/20170303002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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